[ 한국 운명과 너무 비슷한 ''맨파워'' ]

한국이 97년 외환위기를 맞게 된 것은 당시 정부가 너무 외형에 연연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당시 한국 원화는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었는데도 정부는 국민 1인당 소득
1만달러 초과달성이며 국가서열 상승을 자랑하기 위해 왜곡된 환율과 사양
산업의 밀어내기 수출을 고집했다.

그리고는 국부를 크게 축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외형만 따지며 사업구조조정을 지연하다 낭패를 본 세계적 기업이
있다.

지난해 포천 1백83대 기업, 96년이래 3년 연속 서비스 분야 포천지 선정
"존경스런 기업" 1위를 차지한 미국의 맨파워(Manpower Inc.)다.

국내에서는 최근에야 중요성이 인식된 인력파견업 또는 헤드헌팅업계에서
98년까지만 해도 세계 1위를 차지했던 기업이다.

한국에는 올해 1월 진출했지만 미국과 유럽에선 반세기의 전통을 자랑한다.

54개국에서 연간 총 84만명의 인력을 고용하는 미국과 프랑스의 최대
고용주다.

맨파워도 처음에는 국내 용역회사들이 그러하듯 일용직 블루칼라 파견업
으로 시작했다.

그후 창업주인 엘머 윈터(87)가 70년대 중반 뒤로 물러앉으면서 사업 중점
이 화이트 칼라 사무직 근로자 파견업으로 전환되며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70년대 가정을 뛰쳐나와 대거 취업전선에 뛰어든 여성들의 사회 진출 붐,
80년대 초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인정사정 없는 구조조정과 아웃소싱
붐, 그리고 90년대의 글로벌라이제이션 붐을 잇따라 타며 승승장구했다.

그 결과 우리네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사업 테마를 갖고
세계적 기업이 됐다.

전화 몇 대 놓고 시작한 사업이 97년 3조원이 넘는 기업가치를 이뤘다.

그러나 문제는 90년대 중반 밀려오기 시작한 전문직 종사자들, 특히 컴퓨터
전문인력의 아웃소싱 시대를 내다보지 못한 데서 시작됐다.

광고회사에서 근무하다 25세때 맨파워에 홍보맨으로 입사해 23년만에 회장
자리에 올랐던 미셸 프롬쉬타인(71)이 23년간 장기집권하면서 시대흐름을
읽지 못했다.

97년 프랑스 정부가 임시직 파견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큰 타격을 입고
서야 비로소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는 것만 인식했지 본질을 깨닫지 못했다.

남들은 모두 고급인력 증강을 통한 인력 1인당 이윤 증대쪽으로 움직였는데
맨파워만은 오히려 박리다매를 통한 외형확대와 지리적 영역확대에 열을
올렸다.

이에는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위축되는 시장인 하급 사무직 파견업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비용은
늘었고 이윤은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프롬쉬타인 회장의 오랜 동료인 프랑스 지역 사업책임자
미셸 그루네이유(70)를 퇴진시키려다 사내 분규가 발생해 자중지란만 빚었다.

이 과정에서 97년 8월 주당 50달러가 넘던 주가는 꼭 2년 후 22.5달러로
폭락했다.

회사 가치 55%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몇 십년을 뛰어 넘어 제프리 조에레스(39)라는
젊은이로 대권이 넘어가며 재건작업이 시작됐다.

"꽁지가 빠지게 뛰겠다"는 조에레스 회장 약속이 들어맞았는지, 지난 10월
27일부터 갑자기 주가가 뛰기 시작해 최근 35달러 선을 바라보게 됐다.

하지만 한번 풍을 맞은 한국 경제, 다시는 옛 영광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
처럼 맨파워도 업계 1위 자리는 불가능할 것이란 평가다.

게다가 인터넷을 통한 용역사업이 이미 대세를 이룬 상태다.

좀더 빨리 포기했어도 이런 사태는 없었을 것임은 한국이나 맨파워나
마찬가지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