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남보다 먼저 예견했다.

그의 가슴속엔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세계를 바꾸겠다는 꿈이 가득차 있었다.

그 꿈을 실현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최고의 명문이라는 하버드 대학의 졸업장도 과감히 포기했다.

좋게 말해서 "자퇴생" 나쁘게 말하면 "낙제생"이 된 것이다.

그 때 나이 19세였다.

모험의 결과 그는 25년이 채 못돼 자신을 세계 최고의 부자로,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세계 최대의 가치를 가진 거대 회사로 변모시켰다.

과거 빌 게이츠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코리안 드림"을 이룬 벤처기업가
가 될 수 있었을까.

아마 부모는 아들이 명문대학에 들어갔다는 자랑이 끝나기도 전에 속앓이를
하고 주위에서는 보장된 삶을 포기하는 "바보" 또는 "문제아"로 비웃었을
것이다.

사회의 싸늘한 시선은 꽃 봉오리가 피기도 전에 그의 용기를 꺾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과거 우리 사회는 정형화된 규격의 모범생을 요구했다.

그리고 실력과 내면적 충실도보다는 외형적 간판을 선호했다.

일류대를 지향하고 판검사 의사 회계사 등 소위 "사"자가 달린 일류 신랑감
을 선망했다.

획일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따돌림을 당하고
설자리를 잃었다.

이러한 우리의 일류병은 젊은이들을 온실 속의 화초로 키웠다.

까다로운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일류는 배출했지만 스스로 역사와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창조적 엘리트를 육성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벤처시대는 창의성과 차별성을 요구하고 있다.

성공을 위해서는 관습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움과 모험을 추구할 수
있는 개인적 용기와 이를 수용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과거의 역사에서도 위대한 사람은 공부만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20세기 최고의 천재로 인정받는 아인슈타인은 학교에서 낙제생이었다.

하지만 수학과 과학에는 비범한 재능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바탕
위에서 과학의 역사를 바꾼 상대성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90년대 들어 미국과 일본의 격차가 벌어지게 된 것도 개인보다는 단체를
우선하는 일본의 국민성과 연관이 있다.

일본의 NTT는 VI&P(Visual Intelligent & Personal) 구상을 가장 먼저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었다.

2015년까지 모든 가정에 광케이블을 구축해서 꿈의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원대한 비전이었다.

그러나 실제의 사업전개는 미국기업에 비해 뒤늦었고 격차는 더욱 커졌다.

90년대초 위기를 느낀 NTT의 고지마 사장은 선두탈환의 묘책을 찾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 로터스 등을 방문한 뒤 그가 내린 결론은 현재의
체제로는 미국의 벤처기업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창의적인 소프트웨어의 개발 능력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고육지책으로 NTT는 미국 벤처기업인 제너럴매직에 자본참여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창의성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훈련과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창의성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이다.

한국계 손정의씨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벤처시대에
빌게이츠에 비견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젊은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신화도 미국이라는 기반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미국에 유학하였다.

교장과의 담판과 자격고사를 거쳐 미국 고교 1학년에 전학한 지 2주일 만에
고교 전과정을 마쳤다고 한다.

버클리 대학생 시절에는 담당교수를 비롯한 초일류 과학자들이 돈 한푼 없는
손정의씨의 사업계획을 보고 프로젝트팀에 기꺼이 합류했다.

그리고 세계최초의 음성번역기를 개발했다.

이것이 그의 벤처신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요즈음은 한국에도 창업대열에 뛰어드는 "학교 열등생, 벤처 우등생"인
대학생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창업동아리에 학생들이 모여들고, 강의실을 뛰쳐나온 대학생들이 창업대열에
합류한다.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둔 대학생 기업가도 등장했다.

정부와 대학의 지원도 파격적이라 할만큼 적극적이 되고 있다.

모두가 반가운 일이다.

여기에 우리 기성세대의 의식변화가 좀더 적극적으로 수반돼야 겠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젊은이들의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받아들이면 좋겠다.

어떤 분야의 일류든지 대가로서 인정하는 다변화된 사회가 돼야 겠다.

그래야 벤처기업 창업열풍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고 창의력과
모험심을 갖춘 진정한 벤처 우등생들이 줄을 이어 등장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