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1888~1964)는 지금도 법조계에서 청렴과
강직의 표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우선 그는 개인생활에서도 괴팍하리만큼 담배한개피, 연필 한자루, 종이
한장도 아끼는 근검절약을 실천했다.

공과 사의 구별이 엄격하기는 그 예를 찾기 어려웠다.

가족중 대법원장 차를 타본사람이 없었다.

친구아들이 한강에서 잡아 온 잉어 다섯마리까지 "만에 하나라도 의심받을
짓은 해서는 안된다"고 되돌려 보냈다.

혹 친척이 찾아와 재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집안에 대법원장이 둘이냐"
고 핀잔을 주어 입을 막았다.

그는 세상사람들이 다 불의에 빠진다해도 법관 만큼은 정의를 최후까지
사수해야 한다는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

그리고 "청렴할 수 없으면 법조계를 떠나라"는 명언을 남겼다.

최대교(1901~1992)는 한국검찰사에서 "대쪽"으로 존경받는 검사다.

49년 임영신 상공장관 비리를 수사했던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압력을 받은
법무장관이 기소유예 하라는 공문을 보내자 "검사의 전속권한에 장관이 간여
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회신을 보낸뒤 곧바로 임장관을 기소해 버렸다.

그러나 재판에서 임장관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그는 즉시 사표를 던지고
물러났다.

김홍섭(1915~1965) 판사는 빛바랜 군복바지에 양복저리고를 걸치고 도시락과
법전을 끼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서 출퇴근해 "도시락판사"로 더 유명했다.

그는 부정부패나 정치적 간섭에는 추상 같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뇌속에 자신을 항상 수도자처럼 채찍질하며 살아온
법철학자 사상가이기도 했다.

사형수의 가톨릭 대부가 되어 "법복 입은 성직자"란 별명도 남겼다.

김병로 최대교 김홍섭 기념사업회가 법조계의 사표인 이 세분의 동상을 오는
3일 전주 덕진공원에 세운다는 소식이다.

"법조3륜"으로 불리는 판사 검사 변호사가 근래에 모두 권력이나 돈에
흔들리는 참담한 모습을 보여 불신받는 요즘 이들의 청렴 강직을 기리는 것
만큼 뜻 깊은 일도 없을 듯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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