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대담 = 김기환 < 한국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 회장 > ]

지난 97년 한국의 외환위기때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개혁프로그램
작성에 큰 영향을 끼친 데이비드 립튼 전 미국 재무부차관이 24일 밤 KBS가
마련한 특별대담에 출연했다.

립튼 전 차관은 2년전 임창열 전 재정경제원 장관이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후 당시 미국 재무부의 루빈 장관 지시로 한국에 두번이나
파견됐었다.

립튼 전 차관은 한국의 빠른 경기회복이 반짝 성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경쟁을 북돋우는 제도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위기극복에 앞장섰던 정부는 변화와 성장의 주도권을 시장에 돌려줘야
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화와 성장의 주체는 민간이어야 한다"며 "외국 투자자들이 주목
하는 것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부의 개입없이 시장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제체제의 탄력"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위기극복이 놀라운 것이긴 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이 될지는
아직 의문이 있다"며 "각 경제주체의 끊임없는 구조조정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립튼 전 차관과 김기환 한국 태평양 경제협력위원회 회장의 대담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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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환 회장 =립튼씨는 2년전 한국에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미국정부를
대표해 한국을 두차례 방문하는 등 위기수습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경제위기에 처한 당시와 현재 상황을 어떻게 비교하십니까.

<> 립튼 전 재무차관 =당시 한국을 담당하고 있던 재무부의 일원으로
한국의 경제상태에 대해 많은 우려를 했습니다.

지난 97년 11월말 위기는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고 루빈 재무장관의 요구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저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그같은 위기의 심각성을 한국인들이 미처 인식
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습니다.

외환보유고가 6백억달러를 넘었고 경제는 다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이 스스로 미래를 아주 훌륭하게 개척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아직 남겨진 과세들이 많이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 자본시장에 좋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 김 회장 =경제위기를 2년만에 극복한 것은 이례적인 경우가 아닐까요.

<> 립튼 차관 =한국은 어느 사회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생활수준의 하락이
있었던 위기상황을 겪었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점은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이 한국경제를 정상적인 성장궤도
로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고통도 감내했다는 사실입니다.

<> 김 회장 =한국 경제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 립튼 차관 =외적인 요인과 내적인 요인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본시장의 문제인데 이는 어느 나라도 극복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해외 투자자들과 채권자들이 한국경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급속한
자본 회수에 들어갔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발생했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결함을 들 수 있습니다.

정부와 은행 그리고 기업의 유착관계가 최적의 투자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97년 초부터 몇몇 재벌들이 재정난을 겪거나 부도를 냈고 이는 은행들을
연쇄파산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 김 회장 =립튼씨가 지적한 점 외에도 공공부문의 비효율이라든가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 등 한국경제에는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20여개월동안 이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개혁노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립튼 차관 =97년 12월22일 두번째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제시한 전략들이 지금까지 실천되고 있는데 큰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전략은 두가지였습니다.

경제적인 전략은 시장을 개방해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적인 전략은 정부 재벌 근로자간의 3자 협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고
이 점이 지난 2년간의 변화를 가져온 핵심입니다.

<> 김 회장 =한국이 IMF가 요구하는 이상의 개혁, 즉 IMF-플러스를 단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립튼 차관 =세계는 한국의 빠른 회복에 놀라면서도 반짝 성장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 김 회장 =한국 경제를 비롯해 사회 정치구조 개혁 노력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 립튼 차관 =외부에 있는 사람이 조언을 하기란 어렵지만 서양 사람들,
특히 투자자들이 어떤 점을 눈여겨 보는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구조조정이 지속돼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낼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노동조합이 구조조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가장 절실한 문제는 정부의 역할입니다.

정부는 전략적으로 구조조정을 이끌어 나가야 하지만 때가 되면 한발 물러서
경제의 주도권을 시장에 넘겨 줘야 합니다.

미국이 그렇듯 변화와 성장의 주체는 민간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법의 질서가 확립되고 시장이 기업간 경쟁을 북돋우는 것이 전제조건이
되겠죠.

경쟁적 시장체제는 결국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 많은 기회를 줍니다.

문제가 생겨도 정부의 개입없이 스스로 해결하기도 합니다.

한국에는 시간이 좀더 필요하겠지만 외국 투자자들이 주시하는 것은 바로
탄력있는 경제구조의 특징을 갖춰 나가느냐일 것입니다.

<> 김 회장 =한국정부는 튼튼하고 탄력적인 경제구조 형성을 위해 첨단기술
분야를 개발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 립튼 차관 =서머스 장관은 농담조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는 양복
한벌을 장만하기도 전에 돈방석에 앉는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있는 기업가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에도 첨단 기술분야에 이런 기업가가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자나 채권자의 권리가 보호되고 법적으로 뒷받침 될 때 신뢰를 갖고
한국의 기업가에게 투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같은 제도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다음 세기 한국이 튼튼한 경제를
이룩하는데 핵심이 될 것입니다.

<> 김 회장 =새로운 경제구조가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 립튼 차관 =거기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법의 역할입니다.

한 연구 결과 법이 올바르게 집행되는 나라일수록 자본시장이 탄탄하고
고성장을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한국의 경제구조를 비판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과거 십수년 동안 한국은 나름대로의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으니까요.

그러나 세계화된 경제구조에서는 지식기반 인력과 소규모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한국이 과거의 성공을 이어 나가려면 세계경제적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
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 김 회장 =얼마전 시카고에서 열린 연방준비은행 주최 회의에서 립튼씨는
한국개혁의 성공이 한국 및 아시아의 미래와 역할에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개혁을 세계 경제에 다가서기 위한 구조조정으로 간주하십니까.

<> 립튼 차관 =그렇습니다.

한국이 힘겨운 정치 경제 사회문제들과 씨름하는 과정을 아시아 각국과
미국이 지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다음 세기에 주요한 지역에서 중요한 국가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강력한 경제력은 정치와 안보 사안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김 회장 =한국은 아시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중심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하며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경제회복기에 들어선
일본이라는 두 거대 경제국 사이에서 새로운 기회를 많이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립튼 차관 =한국의 위치도 중요하지만 경제의 성격에 따라 역할이
규정될 것입니다.

<> 김 회장 =동의합니다.

한국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에 아시아 경제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졸업생의 60%가 대학에 진학하고 전체 노동력의 20%를
대학졸업자가 차지하는 등 풍부한 인적자원이 있습니다.

<> 립튼 차관 =매우 놀랍습니다.

지난 97년 한국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30세 정도되는
한국 청년의 옆자리에 앉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생물공학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개척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서구의 비즈니스와 연구분야에서 협력하고 세계적으로 두드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 김 회장 =아시아의 미래로 화제를 돌려 보겠습니다.

최근까지 소위 "네 마리의 용"이 이끈 아시아의 급성장이 앞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 립튼 차관 =21세기가 아시아의 세기라는 말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세게 모든 나라들이 역동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벌일 것입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위기를 통해 민첩하고 유연하게 세상의 변화에 적응
해야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시아의 정치세력들이 경제가 시장중심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조심스럽게 조성해 나간다면 아시아의 경제적 역동성은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 김 회장 =냉전시대 이후 아시아에서 미국의 정책목표는 무엇입니까.

<> 립튼 차관 =미국이 태평양 연안 국가들과 파트너로 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대화를 통해 미국과 아시아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았습니다.

다음 세기에도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할 것입니다.

특히 몇몇 위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경험을 살려 앞으로도 미국의
역할은 특수한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 김 회장 =세계 금융체제 개편에 있어 어떤 구조적 변화가 있어야 합니까.

<> 립튼 차관 =새로운 국제기구를 세우는 일은 없겠지만 새로운 제도와
방법은 도입해야 할 시점입니다.

서구의 투자자들이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고 투자할 수 있는 조치들이
필요합니다.

또 각국이 시장기구에 의존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 운영도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엔 법체제 완비, 파산제도, 은행에 대한 감독 개선 등이 포함됩니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위기가 재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 김 회장 =제도개혁에 투명성 강화도 포함될 수 있겠습니다.

<> 립튼 차관 =투명성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
이 바뀌기 힘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한국은 무역에서만 다른 나라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의 호평을
받는 것에서도 경쟁합니다.

투명성을 높이고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
입니다.

<> 김 회장 =한국인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 립튼 차관 =지난 97년에는 미국을 대표해 한국에 갔습니다만 개인적
으로도 한국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주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한 한국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끝까지
튼튼한 시장경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 바랍니다.

< 정리=박민하 기자 hahaha@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