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계의 "살아있는 신화" 피터 드러커 교수가 19일 90회 생일을 맞았다.

20세기가 낳은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드러커 교수는 한국경제신문
사가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고 특별기고를 해 왔다.

학자 저널리스트 컨설턴트 저술가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해온 그의 대하와
같은 삶과 학문세계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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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이 내놓는 미래 예측은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1929년 피구(A.C.Pigou)는 "미국경제엔 공황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수개월 뒤 미국은 공황을 맞았다.

슘페터도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언했지만 아직 그 예언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 자신도 지난 20세기 적지 않은 전망들을 해왔다.

물론 그중엔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었다.

38년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전체주의는 몰락할 것이라고 나는 단언했다.

전체주의가 개인주의를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88년엔 소련연방의 해체를 예견했다.

정보의 확산이 빨라지면서 소수민족들이 더이상 소련연방과 같은 대제국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미사일 추적장치 등 군사용으로 주로
쓰였다.

그러나 나는 이 컴퓨터가 회계처리나 공정관리를 위해 기업에서 가장 많이
쓰일 것으로 봤다.

이런 예측들은 대부분 들어 맞았던 것이다.

나는 69년 "단절의 시대(The Age of Discontinuity)"란 책에서 지식이
기업의 핵심 자원이자 주요 생산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육체노동자는 쇠퇴하고 지식근로자가 기업의 주요 생산자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93년 발간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그 전망들을 다시 확인한
것이었다.

분명히 21세기는 지식사회(Knowledge Society)가 될 것이다.

당연히 미래 자본주의의 과제는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을 어떻게 높이느냐다.

1백년전 테일러(F W Taylor) 이후 육체노동자의 생산성이 중요했던 것처럼
이젠 지식근로자의 생산성 향상이 핵심 과제다.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지식근로자가 수행해야할 과업이 무엇인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육체근로자의 생산성 향상에선 기존의 과업을 잘 수행하는 방법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식근로자들에겐 그 과업이 무엇인지 자체가 더 중요하다.

둘째, 지식근로자의 생산성 향상에 대한 책임은 개별 지식근로자 자신에게
있다는 점이다.

지식근로자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그들은 자율성(autonomy)을 갖는 동시에 책임(responsibility)도 져야 한다.

셋째, 지속적인 혁신이야말로 지식근로자의 과업이자 책임이다.

육체근로자는 지시 감독하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므로 혁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으나 지식근로자는 그렇지 않다.

넷째, 지식작업은 지속적인 배움과 지속적인 가르침을 요구한다.

다섯째,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에선 산출량(quantity)뿐 아니라 품질(quality)
도 똑같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지식근로자를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인식하고 유지.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비용(육체근로자)은 줄여야 하지만 자산(지식근로자)은 늘려야 한다.

기업의 미래를 생각하면 사실 불투명하다.

20세기의 독특한 발명품인 기업시스템이 21세기에도 존속할지는 의문이다.

기업들의 경영기법이 너무 고도화돼 새로운 것을 성취할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마도 제너럴모터스(GM)나 시어즈로벅 등과 같은 대기업들은 30년이상
지금과 같은 번영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식근로자들은 특정한 회사에 자신의 삶을 던지기보다는
사회봉사기관 등에서 비영리활동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이미 미국에선 회사 일에 지친 45~50세 사이의 지식근로자들이 은퇴해
봉사기관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자신의 남은 건강을 사회의 건강을 위해 쓰려는 것이다.

육체근로자와 달리 근로생활수명(working life expectancy)이 긴 지식
근로자들에겐 이같은 인생 후반부 설계가 중요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20세기가 "기업의 시대"였다면 다음 세기는 "사회단체의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린 앞으로 늘어나는 은퇴 지식근로자들이 무보수로 자원봉사할 수 있는
자리를 더욱 많이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지난 2년간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라는 터널을 지나 왔다.

그 터널의 앞과 뒤는 완전히 다르다.

터널 이전이 산업사회였다면 터널 이후는 정보화사회다.

그런 점에서 한국엔 희망이 있다.

그동안 한국만큼 더 잘 교육받고 성취감 넘치는 엘리트 지식근로자를 많이
개발한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한국도 정년퇴직한 지식근로자들이 멋있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도 이르지 않다.

나는 21세기를 기본적으론 낙관한다.

기술발전으로 사람들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릴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필연적으로 인간성 상실이라는 부작용을 남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시민정신을 가진 시민과 비영리단체의 활동이 필수적
이다.

미래사회에서야말로 공동체의 부활이 더욱 필요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