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 기술산업실의 김양희 박사 앞에서 의류가 사양산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혼쭐날 각오를 해야 한다.

인터넷이나 정보통신 등의 첨단 산업에 가려 빛을 못보고 있지만 의류는
아직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가진 산업이라고 김 박사는 단언한다.

일본 도쿄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 의류산업의 현주소를
연구한 끝에 미래가 밝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의류산업의 발전은 영원하다고 주장하며 "의류산업
부흥의 전도사"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지난달 동대문시장이 실리콘밸리와 비슷하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내놓아 주목을 끈 인물이다.

그는 의류산업을 발전 단계에 따라 "기획-생산-판매"의 세가지 사업 영역
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의류산업은 아직 생산부문에만 너무 치중, 노동집약적인 저부가가치
산업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뿐만 아니라 기획 업무도 함께 할 수 있는 전문 업체들이 많이 생겨
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도 고급 의류 브랜드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는 외환위기를 맞은 작년 의류 수출액은 48억달러 정도로 최대 호황기
였던 지난 89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것도 대부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류산업이 다시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 변화의 조짐으로 김 박사는 먼저 재래 의류시장의 성공적인 부활을
들었다.

동대문시장은 도매에서 소매로 전략을 바꾼 뒤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밀리오레 두산타워 등이 들어서면서 세계 최대의 의류산업 집적지를 이루게
됐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이에 자극받은 남대문시장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김 박사는 이젠 이 재래시장 상권들이 기획.생산.판매 시스템을 가장
이상적으로 통합한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동대문 등 재래시장은 소규모 상인 중심으로 이뤄져 시장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요. 소비지에 자리잡고 있어 정보수집과 예측도 쉽습니다.
이런 강점으로 중.저가 의류 제품의 세계적인 수출기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이들 재래시장을 통한 드러나지 않는 보따리 수출 규모가 연간
1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초기엔 중국이나 러시아 보따리상들이 주로 많았지만 이젠 일본의 도.소매상
까지 동대문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제품도 처음에는 모방이 주류였지만 지금은 자체 개발한 독창적 패션
으로 유행을 이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 의류산업은 디자인 서비스 품질 납기 등 아직 보완.해결
해야 할 점들이 많다는 그는 의류업계 관계자들에게 애정어린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선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인체해부학까지 연구하고 있지요.
이런 장인정신을 배워 한국 의류산업을 정보.지식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
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02)3780-8171

< 서욱진 기자 ventur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