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통신장비 회사인 지멘스사가 요즘 새로운 경영 실험으로 바쁘다.

업무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들을 사내 컨설팅으로 해결해
내는 실험이다.

예전 같았으면 매킨지나 보스턴컨설팅 등 전문 컨설팅 기관들에 맡겼을 경영
개선 프로젝트들을 모조리 자체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전초 기지는 ''지멘스 대학교(Siemens University)''라는 사내 연수
기관이다.

간부 재교육을 위한 ''대학교''가 컨설팅 실습 기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내에서 제기되는 경영 개선 과제들을 연수생들에게 ''케이스 스터디''의
대상으로 삼아 해법을 찾아내도록 하고 있다.

"연수원은 임직원들을 재교육시키는 비용 센터일 뿐이라는 고정 관념은
깨져야 한다. 연수원도 얼마든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왜 갖지 못하는가"

대부분 기업들에 생소한 "자체 컨설팅 시스템"을 창안해 낸 마티아스 벨만
정보통신부문 인사관리 본부장은 최근 비즈니스 위크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발상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교육을 위해 부단히 연수원을 찾는 간부들을 아마추어 컨설턴트로 활용
하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 벨만 본부장의 설명이다.

우선 연수생들에게 딱딱한 이론이나 판에 박은 듯한 외부 사례 연구에만
매달리지 않고 "우리 회사"에서 막 발생한 개선 과제들과 직접 씨름토록
함으로써 학습에 대한 흥미를 훨씬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해서 도출된 해법을 실무에 곧바로 적용함으로써 외부 컨설팅
비용을 절감하는 부수 효과가 뒤따른다.

지멘스는 이런 식으로 해서 절감된 컨설팅 비용만 올들어 1천1백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말하자면 "지멘스 대학교"가 지난 10개월 남짓한 동안에 1천1백만달러의
"이익"을 낸 셈이다.

지멘스가 연수원을 통해 해결한 개선 과제들은 통신 비용 절감 방안에서
부터 조직 효율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다.

"어떤 문제든 연수생들에게 케이스 스터디의 과제로 던져 놓으면 신기하게도
척척 해결된다"

연수원 관계자의 얘기다.

세계 1백90개국에 걸쳐 44만4천명의 임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방대한 회사
이다 보니 "인재 풀"이 그만큼 탄탄하게 갖춰져 있는 덕분이다.

연수원을 통해 해결 방안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조금 특이하다.

연수원측은 우선 6명의 간부들로 1개씩의 "학습조"를 편성한다.

이들 6명의 간부는 각각 서로 다른 부서, 가능한한 상이한 나라의 출신들로
구성하는게 원칙이다.

그리고는 해결책이 요구되는 "케이스"를 내놓는다.

조원들은 연수원에서 합숙하는 동안 해법을 찾아내지 못했을 경우 근무
부서에 복귀한 뒤에도 E메일 등을 통해 해결책이 도출될 때까지 "토론 학습"
을 계속한다.

지멘스가 이런 "사내 컨설팅 시스템"을 도입한 데는 나름의 절박한 이유가
있다.

임직원들 모두로 하여금 발상의 전환을 통해 만성적 병폐로 지적돼온
"회사 관료주의"를 떨쳐내자는 것이다.

지멘스는 연간 생산하는 휴대폰만도 1천2백만개에 달하며 외형이 6백50억
달러에 달하는 첨단 다국적 기업인데도 조직 관리는 "원시 수준"을 면치
못한다는 비아냥을 들어 왔다.

예를 들어 사무 비품 등 업무에 소요되는 기자재들을 전사적으로 일괄
구입하면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는 경우에도 부서별로 "각개 약진" 구입을
하는 바람에 경비를 낭비하는 식이었다.

이로 인해 낭비되는 예산만 연간 4백만달러가 넘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또 경쟁회사인 제너럴 일렉트릭(GE)과 통신 서비스, 금융, 소비자 컨설팅
등 부가가치가 높은 연관 사업에서 대결하기 위해서도 조직 전체의 "유연한
사고력"을 키울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지멘스는 GE가 관련 서비스업에 발빠르게 진출하는 동안 장비 제조업에만
안주하는 통에 사업 효율성이 크게 뒤처지게 됐다는 비판을 들어 왔다.

지멘스가 기업내 컨설팅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그 자체의 효용성 못지않게,
무겁게 가라앉아온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자는 시도에서 비롯된 셈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