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성 < 서울대 교수 / 국제지역원장 >


이제 20세기도 50일밖에 남지 않았다.

지나가는 한 세기를 반추하면서 지난 1백년 동안 가장 중요한 직업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자연스럽게 "경영자"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는 1900년대 초반에 프레데릭 테일러가 과학적 방법을 제창한 이후
헨리 포드가 이를 이용해 자동차를 대량생산하는 길을 열었다.

그 후 제너럴 모터스의 알프레드 슬로언, IBM의 톰 왓슨,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같은 경영자들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미국경제를
선도해 왔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경제는 물론 군사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 걸쳐
전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과 같은 재벌그룹의 창업자들이
탁월한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해 경제는 물론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해 경영자들은 20세기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지난 1백년 동안 수많은 학문 분야 중에서도 이론으로나 현실적으로
나 발전이 가장 컸던 분야 역시 경영학이었던 듯하다.

이제 새로운 시대, 21세기에는 누가 우리의 영웅이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학문 분야가 경영학을 대신해서 사회를 끌고 갈 것인가.

나는 "디자이너", 그리고 "디자인학"이 정답이라고 믿는다.

20세기가 대량 생산에 의한 물질문명 사회였다면 21세기는 소비자 개인이
기업의 부가가치를 좌우하는 감성문화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 20세기에도 레이먼드 로우위, 필립 스타크, 알바 알토 같은 디자인의
대가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21세기에는 디자인 분야의 대가가
문자 그대로 우리의 영웅이 될 것이다.

경영에서 디자인으로 시대의 초점이 바뀌어간다는 추론을 기업에 적용해보면
기업의 미래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이 가능해진다.

과거 우리는 기업을 얘기할 때 높은 굴뚝이 서있는 공장을 연상했다.

길가는 사람에게 현대자동차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대부분은
울산에 있다고 답변할 것이다.

이 답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정답을 맞췄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더구나 심각한 경제위기와 IMF 관리체제를 경험한 한국에서는
거대한 공장이 있는 곳에 기업이 있다는 답변은 더 이상 정답이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산업, 특히 자본집약적인 산업에 있어 생산능력이 소비량을 초과
하고 있는 오늘날 기업이란 더 이상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판매능력 이상으로 생산시설을 갖고 있는 기업은 구조조정 대상밖에 안된다.

이제 기업은 만드는 곳이 아니라 파는 곳이 된 셈이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기능을 가진 제품을 개발하거나 기존의 제품을 새롭게
정의해서 그 제품을 필요로 하는 고객을 새로이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는
주체가 바로 기업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자동차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이제는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자동차가 소비자를 만나는 곳, 즉 자동차시장이라는
답변이 정답이 되었다.

여기에서 한걸을 더 나아가 대부분의 상행위가 인터넷을 통해 전자상거래로
이뤄지는 오늘날에는 가상공간에 현대자동차가 있다는 표현이 새로운 정답이
다.

과거의 기업이 공장이었고, 현재의 기업이 유통시스템이라면, 미래의 기업은
어떤 모습이 될까.

미래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개성에 입각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 때 기업은 정성을 다해 나무를 키우듯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
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로 혜택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렇듯 개인의 개성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창의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진다.

바로 이 과정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두 글자 앞에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그 내용은
엄청나게 바뀌게 된다.

1970년대까지는 여러가지 기업활동 중에서 생산이 가장 중요했다.

마케팅은 그 다음이고 디자인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80년대와 90년대에 와서는 마케팅이 점점 더 중요해졌으나 아직도 디자인
보다는 생산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90년대의 과도기를 거쳐 2000년대에 가면 디자인이 마케팅과 생산을
앞서게 될 것이다.

디자인에 의해서 제품개발이 이뤄지면 마케팅은 자연히 이에 따라가게 되고,
공장에서의 생산은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나이키나 베네통과 같이 아웃소싱(outsourcing), 즉 공장없이
디자인만 하고 그 디자인된 제품을 하청 공장에게 맡겨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가 주류가 될 것이다.

이같이 디자인은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의 미래는 디자인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산업디자인진흥대회에서 보았듯이 이미 우리 사회
에서도 디자인은 중요한 분야로 자리를 잡았다.

또 21세기로 넘어가면 디자인 분야는 더욱 성장해 우리 사회를 주도할
것이다.

경영자들은 금세기 남은 50일 동안 디자인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디자이너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 cho@ips.or.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