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시장에 꿈이 영글고 있다.

세계적 패션쇼핑 명소로 확고한 명성을 굳히는 꿈이다.

동대문 상인들은 잠을 자지 않는다.

새벽녘에 잠깐 졸 따름이다.

그런데도 피곤한 줄 모른다.

자신이 만든 옷을 사려고 젊은이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요즘엔 일본인 쇼핑객들도 앞다퉈 몰려 오고 있다.

교복을 입은채 동대문시장을 누비는 일본 여고생들을 보면서 상인들은
세계를 제패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동대문에서는 누구나 꿈을 꾼다.

새내기 상인들도 꿈을 꾸고 거상들도 꿈을 꾼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만든 옷을 외국 젊은이들이 입는 모습을 상상한다.

봉재공이나 점원들은 자립할 날을 꿈꾼다.

상가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아마추어 가수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카메라 앞에 설 날을 기다린다.

"동대문 드림"은 이렇게 다양하다.

패션밸리 동대문 시장은 확실히 달라졌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동대문옷을 옷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명동이나 압구정동 옷을 베껴서 만든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유명 패션전문업체 디자이너들이 새벽마다 동대문을 뒤지고 다닌다.

유행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몇 사람의 힘으로 동대문이 바뀐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겁없는 사람들이 이뤄낸 일인 것은 분명하다.

동대문의 변신은 3,4년전 동대문 운동장 동쪽에 디자이너크럽 팀204 등
현대식 상가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시작됐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패션쇼핑몰
밀리오레와 두산타워가 들어서면서 꽃을 피웠다.

변신을 앞장서 이끌어온 거상들은 동대문을 지탱하는 큰손들이다.

이들이 움직이면 작은 상인들은 뒤따라 간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유행을 선도하는 일도 거상들의 몫이다.

이들은 남들보다 서너달 앞서 다음 시즌 옷을 만든다.

동대문 거상은 젊은 상인들의 우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젊은 상인들은 선배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색다른 옷을 만들어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버리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이라는 울타리가 좁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동대문 변신의 주역 가운데 하나는 디자이너이다.

외환위기가 터져 패션전문업체에서 밀려난 디자이너중 상당수가 동대문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들은 동대문 옷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디자이너들은 고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수시로 디자인을 바꾸곤 했다.

이 바람에 동대문에서는 옷을 20일 이상 걸어두면 팔리지 않게 되어 버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대문을 움직이는 이들도 있다.

봉재공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더 이상 후질그레한 옷을 만드는 단순기능공이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당당한 자부심을 가진 패션업계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자기가 만든 옷을 입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꿈을 꾼다.

언젠가는 자기가 직접 디자인해서 옷을 만들겠다고.

판매사원들의 땀과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과거의 동대문 선배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예전에는 영업시간에 하품을 하기도 하고 입술에 루즈를 바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손님과 삿대질하며 싸우는 점원도 찾아보기 어렵다.

동대문은 잠들지 않는다.

거상에서 새내기 상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재기를 꿈꾸는 오뚜기 디자이너
와 아마추어 연예인, 해방구를 찾아 몰려드는 n세대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람들의 뜨거운 희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김광현 기자 kh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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