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시장은 ''패션 정글''이다.

실력이 달리면 여지없이 먹히고 만다.

그런데도 ''무서운 젊은이들''(앙팡테리블)은 이곳으로 몰린다.

''동대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여기서는 눈에 띄는 옷을 내놓지 못하면 밀려나고 만다.

하지만 모두 다 꿈을 꾼다.

언젠가는 ''대박''을 터뜨리는 꿈을.

동대문 사람들의 24시를 시리즈로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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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의 패션쇼핑몰 밀리오레 1층에서 여성복 장사를 하는 이윤철(27)씨.

경험이 1년에 불과한 새내기 상인이다.

그는 대학 졸업후 반년간 다니던 여행사를 걷어치우고 나와 작년 가을에야
동대문시장에 뛰어들었다.

일에 몰두하고 자신의 창의력을 맘껏 발휘해 보기엔 샐러리맨보다 옷장사가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일과는 아침 8시에 일어나 원단 사러 나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공장에 들러 디자인을 하고 생산 지시도 한다.

밀리오레로 나가는 시간은 해질 무렵.

서너시간 옷을 팔고 한밤중에 도매상가인 팀204의 또 다른 가게로 건너간다.

여기서 지방상인들을 만나고 귀가하는 시간은 이튿날 새벽 4시.

지난 1년간 이씨의 몸무게는 9kg이나 빠졌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신바람이 난다.

올 여름에는 자신이 디자인한 스커트를 많은 여자들이 입고 다니는걸
보고 홈런 친 쾌감을 만끽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선배 상인들로부터 "장사 잘한다"는 말도 곧잘 듣는다.

지난달엔 밀리오레 매장에 2만원짜리 치마를 "미끼상품"으로 내걸어 놓았다.

그 결과 3만원짜리 정상제품을 평소의 2배나 파는 등 만만찮은 솜씨를
발휘하기도 했다.

동대문에는 이씨처럼 거침없이 도전하는 젊은 상인이 수두룩하다.

최근에는 패션업체 디자이너나 유학파 디자이너까지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젊은 상인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불리하다.

자금력도 달리고 노하우도 부족하다.

선배들처럼 단골이 많은 것도 아니다.

믿을 것이라곤 순발력과 패기 뿐이다.

남이 손대기 전에 치고나가 남들이 따라오면 먼저 빠져 나가야 살아 남을수
있다.

그래서 이들의 수면시간은 잘해야 하루 서너시간이다.

상인들은 과감하게 도전해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밀리오레에서 "문군네"라는
가게를 운영하는 문인석(28)씨를 꼽는다.

그는 지난해 9월 밀리오레에 둥지를 튼후 톡톡 튀는 옷으로 젊은이들을
사로잡아 "동대문 드림"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그는 장사를 시작한지 1년여만에 2개의 직영매장과 13개의 대리점을 거느린
(주)문군트랜드의 사장이 됐고 코스닥 상장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공들여 만든 옷이라도 소비자가 사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팀204 상가운영위원회의 양규석 총무는 "젊은 상인 열명중 두세명은 반년도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고 만다"고 얘기했다.

또 "옷장사로 자리 잡기까지 실패를 거듭하기 일쑤고 결국엔 열명중 두세명
만 살아남는다"고 덧붙였다.

의류도매상가인 디자이너크럽에서 "쭌"이란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준희(32)씨
의 경우가 그렇다.

그도 지금은 잘 나가는 상인중 한명으로 꼽히지만 장사에 뛰어든 뒤
두차례나 쓴 잔을 마셨다.

김씨는 5년간 점원 생활로 모은 1천만원을 밑천으로 지난 95년 남대문시장에
가게를 얻어 청바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금 부족으로 망해 공사판을 전전하기도 했다.

2년뒤 동대문 디자이너크럽으로 옮긴 뒤 남방셔츠로 "대박"을 터뜨리고
나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동대문 상인들은 "젊은이들의 실험정신이야말로 동대문을 동대문답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있기에 기존 상인들도 분발하게 되고, 선배와 후배가 경쟁하는
사이에 동대문패션이 유행을 주도하게 됐다는 것이다.

두산타워 마케팅부의 차수현 부장은 "젊은 상인들이 동대문시장을 이끄는
3,4년쯤 뒤면 동대문은 세계적 패션명소로 우뚝설 것"이라고 장담했다.

< 김광현 기자 kh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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