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구세교.

신도수가 80만명에 이르는 일본의 신흥종교다.

이곳 신자들의 종교 활동은 기성종교와는 다르다.

음악회에 가고 미술관을 방문하는게 이들의 신앙활동이다.

탁월한 예술작품이 영혼을 정화한다는 것이 교리의 핵심이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로 부터 불을 전해받은 뒤부터 신에게 굽신거리기를
중단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유물론으로 무장한 칼 마르크스에게 종교는 "민중의 아편"일 뿐이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이들에게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었다.

과학기술이었고 이데올로기였으며 인간 그 자체였다.

종교는 세상의 종말이 오기도 전에 홀로 종말을 맞을 듯이 보였다.

그러나 종교는 함락되지 않았다.

세계 구세교에서 보듯이 종교는 다양한 색깔의 깃발을 내걸었다.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믿는 것외에도 여러가지 종교가 탄생했다.

집단 자살하는 광신도들도 점점 늘어났다.

소규모 종교집단도 우후죽순처럼 증가했다.

과학기술도, 어떤 이데올로기도 인간과 종교를 결별케 하지 못했다.

새로운 밀레니엄에서 종교와 인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더욱 긴밀해진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는 분명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기다.

인간의 독립성은 더 커진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자연의 힘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정보도 한방향으로 흐르는게 아니라 쌍방향으로 오간다.

모든 정보에는 "공유의 원칙"이 적용된다.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은 훨씬 줄어든다.

대신 다양한 정보를 스스로 판단해 선택하는 "자주성"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독자성은 더욱 강조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인간에게 신의 권위는 더이상 필요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밀레니엄에 종교는 산소와 같을 것"(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라는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삶의 궁극적 의미를 물질적 욕구충족에서 찾던 시대는 지났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종교의 가치를 희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
됐다.

오히려 생태계파괴와 핵무기 유전자조작 등으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독립성이 강해진다는 점도 종교가 가진 힘을 약화시키지 못할 것으로 예상
된다.

독자적인 판단은 책임을 동반한다.

이를 뒤집어 얘기하면 그만큼 불안감이 커진다는 뜻이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종교를 "확실하고 영원한 가치를
탐구함으로써 자신을 초월하려는 인간 내부의 욕구"라고 규정했다.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서 느끼는 불안을 종교를 통해 해소하려 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미래사회에서도 종교로의 회귀 현상은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
이다.

그렇다고 세계 구세교처럼 비정통 종교가 창궐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인간의 객체성이 강조될수록 더 강력한 권위를 가진 종교가 필요하다.

기성 종교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화할 것이며 이미 변신을 시작했다.

인터넷 공간에는 절이나 성당 혹은 교회가 계속 들어차고 있다.

포교 수단도 다양화되고 있다.

신도층을 세분화해 접근하는게 대표적이다.

청소년과 성인 어린이 등 세분화된 신도층을 상대로한 전문적 포교가
나타나고 있으며 교리 해설서도 쉬워지고 있다.

또 종교동호회와 같은 여러가지 집단적 모임도 부쩍 활발해졌다.

국제적 교류도 활발하다.

미국에 사는 교포도 한국의 교회에서 주일날 예배를 볼 수 있다.

선교의 개념에 머물던 종교의 글로벌화는 신앙생활로까지 영역을 확대중
이다.

사이버 교회나 불당은 예수나 부처의 위상이 가상 현실세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현실세계의 교회나 불당과 다를 바 없다.

이들의 가르침은 왜곡되지 않고 전달된다.

사이버 공간이라는 특성에 맞게 가르침을 전하는 방법이나 용어가 다를
뿐이다.

현실종교의 연장이나 새로운 세계로의 영역확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점도 있다.

형식이나 절차에 있어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사이버를 통한 종교활동은 인간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예컨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절이나 성당 교회등을 찾아 들어갔다고
해도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설교나 강론을 들을 필요가 없다.

기계속에서는 아무래도 산사나 교회처럼 경건함을 느끼기도 어렵다.

모든 행위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새로운 밀레니엄에서 종교는 더이상 소원을 말하고 이뤄지길 기원하는
기복신앙이 아니다.

인간의 독자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써 역할이 강조된다.

신의 절대성 앞에 무조건적으로 굴복하거나, 혹은 인간이 신의 위치를
차지하려는 무의미한 투쟁은 불필요해진다.

인간과 신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상생의 단계로 접어든다는 얘기다.

인간의 독자성과 신의 절대권위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 조주현 기자 forest@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