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패션회사 중에는 젊은 창조자들을 돕는 기업이 여럿 있다.

특히 오랜 전통과 품질을 인정받는 명품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회사일수록
수많은 예술 후원할동을 벌여왔다.

"문예 옹호"를 뜻하는 메세나는 이제 그 기업의 양식과 양심을 측정하는
척도 역할을 할 정도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명품업체들의 메세나는 예술가의 작품을 사거나 전시회를 열어주는 등의
일방적이고 단순한 지원방식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곳이 많다.

여러 형태의 공동 작업을 통해 예술가들의 작품과 일반 소비자 그리고
기업이 서로 연결고리를 갖게 하는 것이다.

독일 디자이너 질 샌더는 미술작품 수집가이자 열렬한 후원자로 유명하다.

패션잡지보다 미술잡지에 자주 인터뷰가 실릴 정도.

그는 평소 브랜드 고유의 깨끗하고 절제된 라인이 조셉 뷔이라는
아티스트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또 예술과의 교류가 없는 패션은 성장하지 못한다며 패션기업의 예술지원
활동을 늘 강조해 왔다.

"21세기는 협력의 시대며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하모니를 이뤄야 한다"는게 질 샌더의 주장이다.

프랑스의 에르메스도 메세나의 좋은 예다.

에르메스는 조각가 화가 사진작가 무용가 등 다양한 예술분야의 개척자들을
후원하며 교류관계를 유지한다.

지난 6월초 국내에서 열린 프랑스 여류화가 아니에스 레비의 전시회에는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회장과 가죽 장인 등 에르메스 사람들의 초상화가
여러개 걸려 있었다.

이 화가에게 에르메스는 중요한 스폰서일 뿐만 아니라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무 조각가 크리스티앙 르농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대표작 중에는 에르메스의 상징인 말조각(페가수스)외에도 이 브랜드의
히트 아이템인 핸드백과 스카프가 나무로부터 움터나오는 형상의 조각 등이
있다.

고객에게 순은으로 만든 주전자와 바오밥나무 씨앗을 선물하는 전통에서
알 수 있듯 나무는 에르메스 기업정신의 상징물이다.

에르메스는 조각가 르농시아의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일반에 전달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사진작가 데니스 펠릭스와 기시노 마사히코, 현대 무용가인
프랑수아 라피노 등이 에르메스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는 동시에 대외적으로
에르메스의 기업 이미지를 전파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루이비통 또한 문화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행사 후원을 해오고
있다.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도서관 복원, 매년 열리는 파리 런던 뉴욕의 클래식
자동차 전시회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97년 9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7인의 남자들 콘서트
를 지원했다.

루이비통은 문학부문에도 아낌없는 지원을 해왔다.

마르셀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나쓰메 소세키 등 명망있는 작가들의
여행에 관한 책의 재판 작업을 후원하는 한편, 89년 홍콩 신문화센터의
스테이지 커튼의 제작을 담당했다.

루이비통은 특히 금세기 최고로 불리는 작가들을 직접 상품 디자인에
참여하게 해 명품을 남긴다는 전략도 택하고 있다.

루이비통의 펜은 세계적 건축가이며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아누스카 헴펠이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최근에 발표한 뉴욕 트레블 노트북은 쿠바의 예술가 루벤톨레도의 작품이
담겨져 있다.

이 공책에는 톨레도가 직접 그린 뉴욕의 가볼만한 곳 소개와 뉴욕인의
다양한 일상을 포착한 일러스트레이션이 수록돼 있다.

루이비통은 루벤 톨레도의 뉴욕전시회에서 판매된 작품의 수익금을 에이즈
퇴치를 위해 썼다고 밝혔다.

이는 패션기업의 메세나가 다시 아름다운 사회운동과 연결되는 결과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중 하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