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고 있는 신기술을 깨워라"

새 천년 기술정책이 풀어야 할 숙제다.

시간과 돈을 쏟아부어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사장되거나 버려지는 기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KIET)이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애로를 조사한 결과 실용화단계
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응답이 전체의 59.8%로 가장 많았다.

특허청이 국가소유 특허기술의 실용화를 위해 기업에 무상대여하는 사업도
실적이 저조하다.

3백7건의 국가소유 특허권중 82%가 잠자고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투자는 세계 6위인데 기술경쟁력이 28위에 머물고 있는
주요인이 기술개발만 할뿐 실용화는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 신뢰성 확보가 선결과제 =이같은 현상은 모든 산업의 뿌리라는 자본재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기계류 부품 소재 등 품목 특성상 수요자로부터 신뢰성을 확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시설투자비가 만만치 않게 들기 때문이다.

공작기계에 사용되는 CNC(컴퓨터수치제어) 기술은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자원부 산하의 기술표준원에 따르면 CNC 관련 기술은 대기업을 비롯
출연연구기관 등에서 5차례 정책자금을 받아 개발에 성공했지만 실용화까지
이른 경우는 거의 없다.

경남 창원의 A사는 한글화된 공작기계용 CNC 장치를 개발했지만 시장
진입에 실패했다.

일본의 화낙 등 외국기업 제품의 벽이 워낙 높았던 탓이다.

국내 수요자들이 품질유지가 어렵고 생산성 저하가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며 국산을 쓰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 국산 CNC 장치가 교육용으로 쓰이고 있을 뿐 산업용으로 보급된
국산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기술표준원 요소기계과
박정우 연구관)

<> 실용화 가능성을 따져야 =경기도에서 환경오염 관련 장치를 생산중인
B사도 실용화에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디젤차량용 매연 재연소 장치를 개발해놓고도 상용화하지 못한 것.

매연물질을 80% 이상 걸러내고 내구성과 연료의 경제성 등 장치의 품질은
외산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높은 가격이 실용화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채산성을 생각하지 않고 개발을 시작한 게 문제였다.

신기술이 빛을 보려면 실용화 정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기술개발 자금을 주는 데는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중소기업청 등 12개 부처가
정책자금을 기술개발 지원에 쏟아붓고 있다.

올해에만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돕기 위해 7천9백86억원의 예산이 투입
되고 있다.

<> 실용화를 위한 정책 미흡 =그러나 개발된 신기술의 실용화를 위한
정책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중기청이 내년부터 개발기술의 사업화 자금(연간 3백억원)을 지원키로 한
것도 이같은 현실인식에 따른 것.

그나마 정부의 기술 인증마크 제도가 신기술 실용화 정책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기술표준원은 우수자본재(EM)와 신기술(NT) 마크를 부여함으로써
신기술 실용화를 촉진하고 있다.

그러나 각 부처가 독자적인 인증마크 부여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기술 개발자나 수요자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인증마크를 늘리기보다는 인증마크를 받은 제품에 대한 판로확보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증제품 지원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 신기술을 활용하라 =대학과 출연연구소의 신기술을 시장으로 끌어내는
것도 신기술 실용화 정책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최근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실험실 창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기청은 지난 5월부터 국.공립대 교수 및 출연연구소 연구원의 겸직을
허용하고 이들이 기업으로부터 스톡옵션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기술을 가진 주체가 적극적으로 실용화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마련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실험실 창업기업은 최근 부쩍 늘어 올들어서만 1백28개사가 생겨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실험실 기술의 실용화를 확산시키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기술이전으로 인한 실용화의 이득이 개발자(연구원 또는 교수)에게 제대로
분배될 수 있는 인센티브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 분쟁의 소지가 있기 때문
이다"(산업연구원 주현 박사)

기술의 사업성을 평가하는 권위있는 기관이 없는 것도 실용화 확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술의 사업성을 검증받지 않고 무작정 실용화에 나서도록 부추기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이는 기술개발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신기술 실용화 정책의 범위에 해외 신기술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산업연구원(KIET)이 서울 홍릉 벤처밸리 조성
의 일환으로 러시아 기술의 실용화를 추진키로 해 주목된다.

기술의 글로벌 소싱이다.

이선 KIET 원장은 "러시아가 보유한 첨단기술을 공모해 한국에서 상용화
하는 것도 벤처 육성의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기초기술과 소재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러시아 기술의 실용화 정책이 자본재 산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
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세계표준화 추진해야 =기술개발을 하면서 세계표준화까지 추진토록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치밀함도 신기술 실용화를 촉진키 위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선진국에서는 기술개발비에 표준화 비용까지 넣을 만큼 기술정책과 표준
정책간 연계성을 강화하는 추세다.

한국경제신문사 후원으로 기술표준원이 28일 개최하는 "제3회 신기술
실용화 촉진대회"는 밀레니엄 기술정책의 숙제로 던져진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이날 행사는 오후 2시부터 과천 기술표준원 강당에서 열린다.

신기술 실용화에 성공한 유공기업 36개사와 유공자 16명에 대한 포상이
있을 예정이다.

EM마크 NT마크 우수재활용(GR) 마크 등을 받았거나 세계우수자본재로
지정된 제품을 생산중인 기업중에서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기업이
뽑혔다.

시상식 후에는 심포지엄이 이어진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진주 테크노경영대학원장이 "신기술 실용화 촉진
을 위한 기업의 추진전략과 정부의 지원시책"을 주제발표한다.

토론회에는 고등기술원의 김한중 원장이 사회를 맡고 한국경제신문사 김형수
부국장, 한국기계공업진흥회 한영수 부회장, 센추리 원윤희 회장, 창민테크의
남상용 사장, 산자부 김종갑 산업기술국장, 기술표준원 윤교원 기계금속부장
등이 참석한다.

< 오광진 기자 kjo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