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제회의 참석 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잠시 시간을 내어 세계
여러 곳에서 수년동안 장기 공연되고 있는 유명한 뮤지컬 "Phantom of the
Opera"를 관람하게 되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기형의 한 중년남자(오페라 유령)가 오페라극장에 숨어
지내면서 폭력과 테러를 통해 극장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젊은
소프라노를 사랑하게 됐다.

그는 그녀의 성공을 위해 헌신했다.

나중엔 여자도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그 여자를 떠나보낸다는 내용이다.

뮤지컬이 진행되는 동안 웅장하고 환상적인 무대분위기와 아름답고 감미로운
노래선율 및 혼신을 다한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남성의 희생과 질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서양의 남녀평등의식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서양에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일찍부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고방식이
정착됐다.

여성이나 약자, 또는 가난한 자의 일방적인 순종이나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한다.

상급자는 아랫사람을 이끌어 주며 함께 노력하고, 부자는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납부, 사회복지 재원으로 활용한다.

이에 반해 우리 나라의 경우 춘향전이나 바보온달, 낙랑공주 등의 고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랑이야기가 여자의 인내나 희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삼종지도"나 "칠거지악" 등 과거의 관습에도 이러한 사고가 뿌리깊이 박혀
있었다.

이는 오랫동안 지속된 가부장 중심의 권위주의적인 생활방식에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방화, 국제화의 시대를 맞아 이제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 주는 건전하고 발전적인 사회문화가 요구되고 있다.

모두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되는 가운데 능력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하나의 축이 되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