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타이슨 < 미국 버클리대 경영대학원장 >

지난 95년초 클린턴 대통령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에 5백억달러를 지원했다.

멕시코의 디폴트(외채상환 불능)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 지원은 "모험"이었다.

구제금융을 준다고 해서 투자자들이 멕시코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또 당시 미국민들은 멕시코 지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래도 클린턴 대통령은 지원을 강행했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미국경제는 멕시코의 정치.경제적인 안정여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멕시코가 경기침체에 빠지면 초기 단계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존립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NAFTA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클린턴 행정부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또 경기침체로 멕시코인들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대거 들어오게 되면
미국에서 큰 사회문제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멕시코 위기는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 "핵폭탄"이라는
사실 때문에 미국은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미 행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멕시코가 디폴트를 선언하면
민간 투자자들의 "개도국 엑소더스(대탈출)"가 발생하고 이는 다른 개도국에
서의 추가 디폴트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멕시코의 디폴트는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고갈 핵폭탄이라는 게 미 정부의
판단이었다.

그 당시 국제금융시장은 구조적으로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90년대초부터 세계 신흥개도국으로 국제 민간자본이 많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에따라 그동안 개도국의 주요 자금원이었던 공적자금의 유입은 크게
줄었다.

민간 투자자들이 개도국의 채권 및 주식시장에 몰려갔다.

그 결과 은행간 신디케이트론(협조융자)은 급감했다.

하지만 이처럼 민간투자가 풍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시장은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 자금은 언제라도 시장에서 떠날 수 있는 돈이었고 또 그같은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다행히 미국의 멕시코 지원은 성공적이었다.

멕시코는 디폴트를 피했고 경제개혁을 가속화했다.

짧은 경기침체후 다시 회복의 길로 들어섰다.

리스크가 컸던 멕시코 채권을 버리지 않은 채권자들도 아무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은 최근 에콰도르에서 디폴트기미가 나타났는데도 에콰도르를
지원하지 않았다.

에콰도르는 브래디채권 발행국중 처음으로 디폴트를 선언하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음에도 미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답은 미국과 에콰도르의 관계, 그리고 세계경제위기에서의 교훈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에콰도르는 멕시코에 비해 미국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적다.

또 에콰도르는 외채위기에 빠진 상태였지만 멕시코처럼 이 문제를 풀기위한
일련의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내놓지 않았다.

이와함께 미국과 IMF는 과거의 세계금융위기에서 민간 금융기관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97년 아시아위기때 미국과 IMF는 태국과 인도네시아 한국 등에 대규모
지원을 실시했다.

그러나 위기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구제금융으로 민간 투자자들은 무모한 투자를 한후 설사 상황이
잘못되더라도 정부나 국제금융기관이 이를 수습해줄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을
갖게 됐다.

미국은 에콰도르문제에서도 이같은 모럴해저드가 발생할 것을 우려,
에콰도르를 지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에콰도르 정부는 대외지급을 유예하고 채무상환조건을 일괄적으로 재조정
하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민간 채권자들은 에콰도르정부의 일방적인 채권조정계획에 반대
했다.

그들은 정부 대신 개별 채무자들과 직접 협상을 원했다.

협상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해서였다.

만약 채권.채무자의 책임과 의무, 협상과 관련한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었다면 에콰도르 문제에서 유용하게 적용됐을 것이다.

특정상황에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협상에 나서도록 하는 규약 같은 것이
만들어져 있어야 했다.

이런 규약이 있다면 채권자들은 개도국에 대한 대출을 꺼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투자행위와 특정국에 대한 과다 대출행위를 줄이는 효과도
낸다.

국제 가이드라인이 있었다면 재작년 세계 금융위기 같은 재앙도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개별 채권자들은 앞으로 에콰도르와의 협상테이블에서 자신들의 투자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모럴해저드에서 벗어나야 한다.

< 정리=박수진 기자 parksj@ked.co.kr >

-----------------------------------------------------------------------

<>이 글은 미국 비즈니스위크지 최근호(10월25일자)에 실린 로라 타이슨
전 백악관 수석경제고문이자 현재 버클리대 경영대학원장의 기고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