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호 < LG상사 대표이사 shlee@lgi.lg.co.kr >

인류의 희망을 표상하는 한 아이가 태어났다.

전쟁, 학살, 인종청소 등 인권유린이 자행되던 보스니아에서 60억번째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타장소에서 태어난 것보다 그 의미가 각별하다.

십진법을 사용한 이후 10단위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일종의 관습이
됐다.

60억번째 태어난 사람이든 55억9천9백99만번째 태어난 사람이든, 그 존재의
차이가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한 아이의 탄생에 대해 60억번째라는 순서를 부여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는 듯하다.

60억번째 생명에 대해 축복하며 인류 새 희망의 징표로 받아들임으로써
희망의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염원, 지속 가능한 세상이어야 한다는 기원을
표출하는 것이다.

인구가 10억명을 넘어선 것은 1804년.

20억명이 되기까지 1백23년이 걸렸다.

그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40년만에 배가 될 정도로 빨라졌다.

인구 60억명은 분명 인류의 생활이 풍요해졌다는 희망의 징표다.

그러나 지구 한켠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 우울한 인류의 현주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태어난 아기에게 덕담을 해 주며 축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탄생을 축복하기앞서 탄생이 진정 축복이 되기 위해 선결돼야 할 조건들을
되짚어봐야 할 것들이 있다.

기아 질병 전쟁 착취 억압 차별 무지 환경같은,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
온갖 문제를 놔두고 갓 태어난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리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60억번째 아이의 탄생이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해, 인류는 지구적
과제를 해결키 위한 연대의 손을 잡아야 한다.

아이의 탄생을 지켜보며 "나는 너를 가난과 총알과 폭력과 에이즈로부터/
침묵과 어리석음과 부패한 인간들로부터 지킬거야"라고 약속한 남아공 시인
안트예 크룩이 쓴 글이 반향없는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노력을 통해 언젠가 태어날 70억번째 아이는 진정한 축복속에서
세상을 맞이했으면 한다.

물론 60억번째 태어난 아이도 이런 저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진정 행복한
삶을 바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