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논설위원 >

국내경기는 분명히 회복기운을 찾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지난해만 못하다.

경제상황에 대한 불안감도 외환위기 이후 크게 달라진게 없다.

10%대의 고율성장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대우사태로 인한 금융불안이 지속
되면서 기업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고, 서민들도
"정말 경기가 풀려 가는 것이냐"는 의문을 떨처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외환위기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국민의 정부가 2년이 채못돼 바닥났던 외환
금고를 다시 채우고,경제활동을 위기이전의 수준으로 거의 되돌려 놓은데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후한 점수를 주는데 인색하기 그지없다.

왜 그런가.

정부일각에서 얘기되듯 정책성과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때문인가.

그런 측면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간단히 결론 내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경제지표의 착시현상 탓만도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추진해온 경제개혁의 목표와 전략의 오류에서 주된 원인을
찾아 보아야 한다.

DJ노믹스의 화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었다.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설명과 함께 관치경제의
탈피를 강조했었다.

과연 이같은 원칙은 얼마나 지켜졌는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과정에서 세세한 결정이 정부에 주도됐고, 금융자율화
는 후퇴했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시장기능이 마비된 비정상적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개입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시장기능을 위축시키는 과잉대응도
많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또 개혁의 형평성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기업.금융.노사.공공 부문의 개혁이 정부가 제시한 4대 개혁과제다.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공공부문의 개혁은 거의
진전되지 않고 있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정부와 공기업 개혁은 물론이고,특히 정치개혁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책임이 여.야 어느 쪽에 있든 변화의 시늉마저 거부하고 있어 한심스럽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혁의 비전과 전략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상황변화에 따라 임기응변식 정책대응이 많았다는 점이다.

구조조정이후의 금융산업, 국영화된 은행의 처리, 재벌개혁이후의 산업조직
과 구조변화, 경영의 민주화와 기업 효율성의 상충, 업종전문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 생산적 복지개념 등은 좀더 충분한 검토를 거쳐 신중히 결정
해야 하는 과제들인데도 정부판단에 따라 우격다짐식으로 도입되거나 시행
되면서 근본적인 정책목표에 대한 혼선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연금 확대와 의료보험통합 등 명분과 의욕이 앞선 사회보장정책은 정책
신뢰성을 떨어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따라서 개혁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이런 과제들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재정립하고, 경제발전의 장기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경제주체들에게 예측가능성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구조조정을 주축으로 하는 경제개혁은 결코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
하는 조급함을 보여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구조조정은 하루 아침에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경제의 바람직한 장기발전 전략을 세우고, 정책의
확고한 원칙과 기준을 세워 일관성있게 적용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바도 바로 이 대목이다.

더구나 내년 4월에 총선이 예정돼 있어 벌써부터 선심정책 시비가 대두됐다.

정부가 확고한 원칙과 기준을 세우지못하면 경제운영이 정치논리에 휩쓸릴
우려가 있다.

다시말해 경제개혁 성공의 전제는 정책에 대한 신뢰회복이다.

더구나 외환위기가 발생한지 2년이 돼간다.

70여일이 지나면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맞이한다.

내년은 새로운 1천년이 시작되는 첫 해이기도하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지도 1년반이 넘었다.

금융시장 불안해소 등 당장 서두르지않으면 안될 과제들도 있지만 숨가쁘게
달려 온 경제개혁의 공과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따져보는 여유도 필요하다

개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보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의
추진을 위한 교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전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창간 35주년기념 특별회견에서
"재벌개혁을 연내에 마무리짓고 내년부터는 선진화된 경영체제 하에서
자유롭게 경영활동을 할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목해 볼만한 발언이다.

물론 기업 스스로 투명하고 정직한 경영과 국제경쟁력 향상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전제가 충족될때 성립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