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라진 은행 풍속도 ]

"가끔 대출을 부탁하러 오는 대기업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을
돌려보냅니다. 나에겐 여신권한이 없으니 여신담당 본부장에게 가보라고 말할
뿐입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 상당수가 주거래로 삼고 있는 한빛은행의
김진만 행장 말이다.

과거의 은행과 은행장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같은 모습은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IMF위기이후 국내은행들은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영업관행을 바꾸는데
주력해왔다.

후진적인 경영스타일을 뜯어고치지 않고선 냉엄한 "생존게임"에서 배겨내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변화는 하드웨어(외형이나 조직)와 소프트웨어(관행이나 기법) 양쪽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났다.

비상임이사 중심으로 이사회 기능을 활성화한 것이라든가, 독립채산제로
책임경영을 강조한 사업부제 도입등은 대표적인 조직수술이었다.

은행장을 배제한 여신협의회가 등장한 것도 IMF체제 이후의 일이다.

은행들은 또 소프트웨어를 바꾸기위해 여신관행을 손질하기 바빴다.

심사분석업무를 보강하고 전문인력을 외부에서 데려온 것은 그 일환이었다.

선진국형의 개인신용평가시스템을 도입하는 은행도 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은행내 역학관계도 크게 바꾸고 있다.

무엇보다 은행장의 위상이 종전과 달라졌다.

은행장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은행내에서 "황제"처럼 군림했다.

수십조원 돈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무소불위의 대출결정 권한을 가졌었다.

은행내 모든 인사도 은행장 손에 달렸었다.

그러다보니 비리가 생겼고 구속 등으로 불명예퇴진하는 은행장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은행장은 이제 조직관리를 책임지는 CEO(최고경영자)로서 자리매김
해가고 있다.

예전과 같은 막강한 권능은 없어졌지만 하기에 따라선 "유능한 CEO"로
대접받을 수도 있다.

명성뿐만 아니라 막대한 부도 쌓을 수 있다.

사회분위기도 이를 인정해가고 있다.

이에 부응하듯 은행장들도 폼만 잡던 과거모습에서 탈피, 발로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장들은 요즘 특히 주가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너도나도 주식가치 극대화를 경영목표로 삼고 있다.

"주가=경영성적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 최고주가를 자랑하고 주택은행의 경우 공공연하게 "CEO주가"란
말을 듣는다.

위성복 조흥은행장은 실시간으로 각 은행 주가를 비교해볼 수 있는 장치를
집무실안에 마련해두고 있다.

주가관리를 위해 투자자들을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송달호 국민은행장, 이인호 신한은행장, 김승유 하나은행장, 신동혁
한미은행장 등은 IR를 통해 은행세일즈를 벌인 은행장들이다.

은행장들은 또 중소기업을 유치하는데도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지점들을 찾아 중소기업 유치를 독려한다.

은행장들이 드디어 "수익성 개념"에 눈을 뜬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이성태 기자 ste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