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용 가구업체 퍼시스의 충주 공장장인 권순오(48)씨는 지난 10월 1일자로
명함의 직함을 "주식회사 수림 사장"으로 바꿨다.

퍼시스가 충주공장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시켰기 때문.

장호원고교 졸업 후 30년 가까이 직장에 몸담은 끝에 사장 명함을 갖게 된
것이다.

기쁨보다 중압감이 앞섰다.

2백50명의 장래를 책임지는 최고경영자가 된 데 따른 것.

책상 캐비닛을 만드는 충주공장은 퍼시스 전체 직원 4백50명의 절반이 넘는
인원이 일해오던 곳이다.

퍼시스로서는 자기보다 더 큰 덩치를 떼낸 셈이다.

이같이 분리시킨 업체가 7개나 된다.

싱크대 생산업체인 한스를 비롯해 <>인테리어 가구업체 퍼인 <>가정용
가구업체 일룸 <>의자부품업체 세일정밀<>물류업체 바로물류 <>제품디자인
업체 크레아 등이다.

이제 모기업 퍼시스는 2백명에 불과한 반면 관계사 인원은 7백명에 달해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커졌다.

중견.중소기업 사이에 이처럼 "꺾꽂이식" 분사 열풍이 불고 있다.

모기업의 "유전자코드"(기술과 경영노하우) 일부를 이식시켜 새로운 경쟁력
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 발전시키는 것.

모기업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시너지효과를 꾀한다.

대기업만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분사가 중견.중소기업으로 확산되는 것은
경영환경 변화에 탄력있게 대응하려면 덩치가 더이상 커져서는 곤란하다는
판단 때문.

형태는 다양하다.

기존 사업부를 떼내 분리하는 경우도 있고 극소수 인원을 모체로 새 사업에
진출하는 사례도 있다.

경영자가 인수하는 방식(MBO), 종업원이 인수하는 형태(EBO), 모기업 출자,
모기업 주주들의 출자 등 여러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임직원의 인식이 바뀐 것도 이런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모기업에서 분리되면 대단히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느꼈다.

신설업체에서 일하면 우리사주나 스톡옵션으로 단기간내 한몫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많고 성장 가능성도 크다는 점에서 이런 거부감도 없어지고 있다.

활발하게 분사를 하는 업체로는 미래산업 메디슨 한샘 등이 꼽힌다.

또 대웅전기를 비롯한 수백개의 기업이 분사를 추진하고 있다.

미래산업은 컴퓨터 보안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오던 소프트포럼 사업부와
인터넷 전문인력을 각각 분리시켰다.

소프트포럼은 출범한 지 반년 만에 금융기관 보안솔루션 시장을 휩쓸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60%가 넘는다"고 안창준 소프트포럼 사장은 설명한다.

이 회사 임직원은 미래산업의 종업원 대부분이 수억원대 자산가로 변신한
것처럼 갑부가 될 꿈에 부풀어 있다.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코스닥에 등록할 예정이다.

종업원 1인당 수천만원 이상의 차익이 기대되고 있다.

인터넷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인원은 라이코스코리아로 독립시켰다.

세계적인 포털서비스업체와 합작하면서 분사시킨 케이스.

부엌가구업체 한샘도 매우 활발하다.

이펙스 넥서스상사 한패상사 한샘조명 한샘바스 한샘퍼니처 에펙스산업 등
7개사를 독립시켰고 연내 1개사를 더 만들 계획이다.

부엌가구 기기 조명 욕조 등 분야별 특화를 통해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

메디슨은 무려 22개의 가족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한방분야 전자의료기기업체인 메리디안, 의료분야 소프트웨어업체 메디다스,
생체신호진단기업체 바이오시스 등.

이민화 메디슨 회장은 "분사는 모기업과 자회사 모두 이득이 되는 경우에
실시하고 있다"고 밝힌다.

제로섬이 아닌, 플러스섬 게임인 셈이다.

모기업의 문화와 시스템은 공유하되 완전한 독립경영이다.

통제와 보호가 아니라 철저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바탕을 둔
또다른 벤처기업들이다.

한 가지 원칙은 모든 계열사가 보건의료분야 전문기업이라는 점.

관련분야 다각화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궁극적으로 메디슨이 추구하는
세계적인 의료기기 전문업체로 도약하는 첨병역할을 하는 것.

이밖에도 분사를 준비중인 업체는 많다.

대웅전기가 한 예.

이 회사는 내년중 성수공단에서 용인으로 이전한다.

이때 여러 개의 기업을 분리 독립시킬 생각이다.

"중견간부중 경영능력이 있는 사람을 골라 창업자금을 융자해주고 생산을
맡긴다"는 것이 김용진 사장의 구상.

대신 제품은 대웅전기가 대웅이라는 브랜드로 통합해 판매한다는 복안이다.

전기밥솥과 약탕기 등 소형가전제품을 만드는 이 회사는 3백여건의 지식
재산권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발명기업.

동시에 엄격한 품질관리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연구개발과 생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에게만 생산을 맡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철저한 선발과정을 거쳐 분사시킬 계획이다.

기업은 생명체다.

기후나 환경변화에서의 적응력은 공룡보다 바퀴벌레가 낫다는 게 역사의
증명이다.

이런 측면에서 분사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다만 분사된 기업이 홀로서기에 성공하려면 경쟁력 있는 기술과 경영노하우
를 가져야 한다.

또 임직원들이 투철한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 김낙훈 기자 nhk@ >


[ 용어설명 ]

<> MBO(Management Buy Out :경영진 매수)

=회사내에 근무하는 경영진이 중심이 돼 회사나 사업부를 인수하는 것.

대부분의 기업인수가 외부인에 의해 이뤄지는 것과는 달리 내부 임원에 의해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대체로 경영자는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 인수한다.

영국에서는 지난 79년부터 96년까지 7천건이 넘는 MBO가 성사될 정도로
구조조정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 EBO(Employee Buy Out :종업원 매수)

=종업원이 공동 출자방식으로 회사를 인수하는 것.

기존 사업부를 분리시킬 때 종업원이 밀린 임금을 출자하는 방식으로 하거나
개인 자산을 투자하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MBO가 새로운 경영진의 의사에 따라 고용이 감축될 가능성이 있는 반면 EBO
는 확실한 고용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고려산업개발은 지난 8월 가구사업부문인 리바트를 종업원매수 방식으로
분사한 바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