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축복(Disguised Blessings)"

한국이 IMF 체제에 들어갈 때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외환위기의 의미를 이렇게 부여했다.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겠지만 한국경제의 고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
라는 점에서는 축복"이라는 뜻의 수사학적 표현이다.

캉드쉬 총재의 얘기가 틀린 것만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많은 분야에서 체질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기업들은 부채비율이 낮아진데다 금리도 떨어져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12월 결산 상장회사의 올 상반기 금융비용은 11조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11.8%나 줄어들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도 한층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 운운하는 것은 그저 부아를 돋우는
헛소리일 뿐이다.

전직 은행원인 김근배(39)씨도 그중 하나다.

그는 작년 6월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자신이 다니던 은행이 퇴출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 후 1년이 넘게 실직상태다.

김씨는 IMF 체제가 드리우고 있는 그늘의 전형적인 예중 하나일 뿐이다.

올들어 고용사정이 좋아졌다곤 해도 아직 1백20만명이 넘는 "산업예비군"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

외환위기 전에 비해 80만명이나 늘어난 숫자다.

여기에 <>구직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 실망실업자
<>일시휴직자와 무급가족종사자 <>18시간 미만 취업자중 추가 취업을 바라는
비자발적 단시간 근로자 등을 포함할 경우 체감실업자 수는 2백여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LG경제연구원)

대량 실업은 중산층 몰락과 빈부격차 확대로 이어졌다.

하위 20% 계층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7년 8.3%에서
98년 7.4%로 감소했다.

반면 상위 20% 계층의 소득점유율은 37.2%에서 39.8%로 늘어났다.

사회 전체의 불평등 상황을 보여주는 지니계수도 외환위기 전까지 0.28
수준을 유지하다 작년에는 0.31, 올 1.4분기에는 0.34로 급상승했다.

IMF체제 이후 짙어진 또다른 그늘은 "카지노 자본주의"다.

올들어 증시가 폭발적 활황세를 보이자 한탕주의 심리가 급속히 확산됐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카지노 자본주의는 근로의욕과 건전한 기업활동을 저하시킨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시중자금 흐름을 단기 부동화시키는 폐단도 있다.

실제로 최근의 부동자금 규모는 1백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자금이 부동산 등 실물투기로 튈 경우 또 한차례 경제의 버블(거품)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건전했던 재정수지가 적자로 전환된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외환위기 당시 균형상태를 유지했던 재정수지가 지난해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마이너스 5%로 전환됐고 올해는 마이너스 4%로 예상되고 있다.

당연히 국가채무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올해말 국가채무는 1백11조5천억원(IMF 기준)에 달할
전망이다.

새 천년 첫해의 예산도 적자로 편성돼 내년말에는 국가채무가 1백23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어림잡아 국민 1인당 3백만원 꼴이다.

정부는 오는 2004년에는 균형재정으로 복귀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전문가들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예속 문제도 점차 IMF의 그늘로 커지고 있다.

정부는 출범초부터 모든 행동양식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해 왔고 외자
유치를 최선의 미덕으로 삼아 왔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 외에 현 정부의
대외정책이 없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국부유출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헐값의 기업매각, 해외증권 발행에 따른 국부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례로 올 2/4분기 국민총소득(GNI)과 GDP의 격차는 2%포인트로 확대되고
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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