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에서 활동할 한국군 상록수부대 본대 1진이 4일 호주로 떠났다.

이 마당에 파병 자체의 적절성을 논의하는 것은 부질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따질 일은 아직도 남아 있다.

특히 한국군의 전략적 운용에 대해서는 한국군이 완전히 철수하는 그 순간
까지 신중히, 그리고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언뜻 보기엔 한국군의 목적이나 역할이 명확한 것처럼 보인다.

동티모르 사태를 찬찬히 살펴보자.

독립에 반대하는 민병대가 국민투표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무법천지를
만들었다.

유엔이 질서를 회복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국적군을 편성해 동티모르
에 파견하게 됐다.

그 뜻에 동의하는 한국도 유엔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병력을 보내게 된
것이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상황이 이처럼 훤하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훨씬 더 복잡하다.

동티모르 문제는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이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이 지역은 16세기 초에 유럽의 식민지가 되었다.

포르투갈이 먼저 동티모르를 점령했고 이어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삼켰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엔 일본이 이곳을 주름잡았고 이에 대항해 호주 군대가
동티모르에 진주했다.

종전과 함께 인도네시아는 독립했으나 동티모르는 다시 포르투갈의 통치
아래에 들어갔다.

지난 75년 포르투갈에 혁명정부가 들어서고 식민지 포기정책을 추구하자
인도네시아는 이듬해 동티모르를 27번째 주로 끌어넣었다.

포르투갈은 유엔안보리에 문제를 제기,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서 철수할
것을 결의하도록 했다.

동티모르 문제는 단순히 자결권이나 인권의 문제가 아니며 열강의 이해관계
가 복잡하게 얽힌 미묘한 국제관계의 산물이다.

특히 호주는 동티모르 근해의 유전개발과 관련,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포르투갈의 이익과도 합치되어 이들 두 나라가 유엔을 움직인 것이다

포르투갈이 동티모르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온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동티모르 문제가 종교적 분쟁의 성격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지배하에 동티모르 주민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가 되자 로마
교황청이 동티모르의 독립을 지원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동티모르는 종교분쟁,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분쟁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동티모르 문제는 또한 국가주권과 인권간의 갈등, 그리고 이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이중적 기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병합했으나 포르투갈은 자국의 주권이 훼손된
것으로 간주하고 인도네시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가 국력이 커서 동티모르 병합에 성공했다면 유사한 사태가
발생해도 국제사회는 내정불간섭 원칙에 의해 간섭하지 못했으리라.

인권문제 역시 강대국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부각되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한다.

동티모르의 문제가 복잡한 만큼 한국군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 한층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한국군이 민병대를 소탕함으로써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발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동티모르 독립은 동티모르인들의 내부문제이다.

그들 사이의 갈등은 그들이 해결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국제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중기준이다.

모든 지역의 인권에 대해 국제사회가 나서는 것이 아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에 대해서만 인권을 명분으로 간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인권에 관한 한 한국의 입장은 그리 당당하지 않다.

한국정부는 북한동포의 인권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탈북자에
대한 중국의 비인도적 처리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동티모르인의 인권보호를 구실로 전투부대를 파병하는
것은 한국 역시 이중잣대를 갖고 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한국이 동티모르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철수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부디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걸맞은 교전규칙과 행동규범을 정하고 그에
맞게 한국군을 운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래야 국제사회 및 동티모르인으로부터 존경을 동시에 받을 것이다.

특히 한국군이 민병대와 게릴라전에 휘말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군 개개인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 chungc@soback.kornet.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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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육사,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석사
<>영국 뉴캐슬대 정치철학박사
<>육사 경제학교수 역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