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맨신화의 주인공 모리타 아키오 소니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1921년 양조장집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 덕에
축음기와 음반더미 속에서 자랐다.

트랜지스터라디오와 워크맨의 개발, 소니뮤직과 픽처스 설립 모두 우연이
아닌 셈이다.

그는 누구보다 시대흐름을 빨리 읽고 적절히 대응할줄 아는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였다.

53년 미국에 트랜지스터 공장을 세울 만큼 국제화경영에 앞장섰고, 79년
아무도 믿지 않은 워크맨사업을 성공시켰다.

80년대후반엔 CBS레코드와 컬럼비아영화사를 사들이는 등 AV소프트웨어
사업쪽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일본식경영의 타파를 외쳤던 그는 또 90년대초 과잉투자로 적자가 누적되자
대대적 조직개편을 단행, 사내컴퍼니제도를 도입하는 동시에 컴퓨터게임기
시장에 진출했다.

93년말 모리타가 테니스시합중 쓰러진 뒤에도 소니의 변신은 계속됐다.

정보통신및 비지니스네트워크 사업에 진출하고 디지털시대에 필요한 복합
상품의 개발을 위해 본사의 통합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조직을 재개편했다.

소니의 힘은 상품및 디자인 개발, 발빠른 국제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동시추진, 독특한 인사관리로 요약된다.

특히 모리타 명예회장이 창안한 사내모집제를 비롯, 직원들의 독창성과
자율성을 키워주는 인사관리는 소니가 몇차례의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날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90년대 중반부터 소니는 가전과 영상 음향기기 메이커에서 디지털시대 종합
멀티미디어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전세계에서 5천5백만대가 판매된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으로 컴퓨터게임기
시장을 석권했을 뿐만 아니라 방송프로그램 제작및 광고시장에도 진출,
디지털방송 시대 세계무대를 주름잡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기술의 소니"에서 "창조의 소니"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목표다.

95년 상무인 이데이 노부유키가 사장으로 전격 발탁됐을 때 주위의 시선은
근심어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데이의 혁신경영으로 소니의 이름은 더욱 빛나고 있다.

창업주의 퇴진에 관계없이 "잘나가는" 소니를 두고 간 모리타회장의 마지막
걸음은 가볍기만 했을 듯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5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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