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아난 < 유엔 사무총장 >


코소보 사태와 동티모르의 비극은 우리에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국민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당사국이 이 고통을 멈추게 할 능력과 의사가
없을 때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코소보나 동티모르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방식은 새 밀레니엄의
모델이 되기에는 여러면에서 부족하다.

이 두개의 사태에서 세계는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조직적인 폭력이
발생했을 때 팔짱만 낀 채 구경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개입이 세계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원칙과 법에
따라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세계화와 국제협력으로 오늘날 국가 주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재정의
되고 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도구라는 것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는 국가관
이다.

동시에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세상은 이처럼 변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렵고 힘든 정치적 결정들이 쉬워지지는 않는다.

대신 이같은 변화들은 유엔이 인간 존엄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다시한번 생각하도록 한다.

르완다사태는 대량학살 앞에서 유엔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코소보사태는 국제적인 공감대와 분명한 법적 근거가 없는 행동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아무리 인도주의적인 개입이라 해도 절차와 합의를 무시한 행동이 어떤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유엔의 위임을 받지 않은 지역기구의 폭력사용이 합법적인가, 아니면 인간
권리에 대한 총체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을 두고만 봐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
다.

이런 비극이 다음 세기에 반복되지 않으려면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이
어디서 벌어지든 국제사회는 이를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이와함께 원칙과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는 국제적인
메커니즘이 만들어져야 한다.

어떤 이들은 국제질서의 최대 위협은 유엔의 위임을 받지않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코소보는 제쳐두고라도 르완다를 예로 들어보자.

죽어가는 르완다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나라들이 군사개입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유엔은 개입을 거부하거나 결정을 자꾸 미뤘다.

당시 르완다에서 공포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 국제사회는 한가하게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는가.

세계 공동의 이해는 무엇이며 누가 이것을 규정한단 말인가.

누가 누구의 권위로 이것을 지켜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수단으로.

이런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외세개입의 4대 조건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개입은 무력을 사용하는 것으로만 여겨져서는 안된다.

무력만을 개입수단으로 삼는 것은 최근 코소보사태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평화를 지키고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통해 경제를 재건시켜 주겠다는 국제
사회의 약속은 지역마다 그리고 위기때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인도주의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이 세계의 지지를 얻으려면 그 약속이
범세계적인 보편타당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 주권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이 효과적인 개입을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냉전후 세계는 근본적인 변화들을 겪었다.

그러나 국익에 대한 정의가 각국마다 달랐다.

21세기에는 공동의 목적과 가치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국익에 대한 정의가
좀 더 새롭고 광범위해져야 한다.

셋째 폭력적인 개입이 필요할 때 안보리는 주저해서는 안된다.

대량학살을 보면서 머뭇거리거나 일부 국가와 지역의 개입에 맡겨둬서는
안된다.

안보리의 기능이 강화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억제하는
힘이다.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이 옳다고 해도 스스로를 올바르게 비판할 수 없다면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유엔헌장은 안보리가 공통된 이해를 수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넷째 분쟁이 끝났을 때 평화에 대한 약속은 싸우겠다는 공언만큼 강해야
한다.

이때 지속성이 가장 중요하다.

시작만 하고 중간에 흐지부지 돼서는 안된다.

평화에 대한 약속이 총성이 멈추자마자 끝나서는 안된다.

전쟁을 뒤처리하는 데도 전쟁하는 것만큼 기술과 희생과 자원이 필요하다.

대량학살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한 무력개입을 뒷받침하는 국제적인 기준을
세우려면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불신과 회의와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인류가 과거 중세시대처럼 고통을 참기보다는 뭔가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 정리=김용준 기자 dialec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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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유엔총회에서 행한 연설 내용
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