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 회복은 믿을만한가.(Is it for real?)

지난 주 워싱턴소재 브루킹스연구소가 내건 포럼의 주제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일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가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3국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세계11위이긴 하지만 한국경제도 일본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되는 왜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경제의 회복이 곧 아시아경제의 회복을 의미한다는 등식의
틀에서 보면 아시아 경제가 정말 회복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시기상조이거나 부정적 이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브루킹스의 일본통 경제학자인 에드 링컨은 이 포럼에서 일본의 급격한
노령화와 이에 따른 복지수요부담 때문에 일본이 더 많은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아시아경제, 특히 일본경제가 정말로 회복기에 들어섰느냐는 질문에
대한 현시점의 답은 부정적이라는 게 링컨의 입장이다.

또다른 정책수단의 한 줄기인 통화정책만 보더라도 일본내 통화가 이미
1조엔 정도 초과공급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통화확대를 통한 일본의
경기부양 또한 한계가 있다는 게 하시모토 도루 일본 후지은행 회장의
분석이다.

그러나 일단 질문이 한국으로 모아지면 그 답은 180도 달라진다.

한국경제의 회복은 2.4분기 8%대의 성장이 말해주듯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것이 토론에 참가한 로버트 호매트 골드만 삭스 부회장의 진단이다.

그러나 이같이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끌어내고 있는 진정한 요인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제 각각이다.

우선 부르킹스의 또다른 연구위원인 C.H 콴은 그 해답을 엔고와 현금젓소
(cash cow) 에서 찾는다.

일본 엔화가 10% 오르면 이로 인해 아시아경제 전체가 1%정도 추가성장을
해왔다고 설명한 콴 연구위원은 40% 가까이 오른 엔고로 지구촌 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한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이 현금젓소로 변신, 위기에
빠졌던 한국경제를 구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엔고와 함께 정부가 개혁대상으로 삼고 있는 재벌들이야말로 한국경제를
부활시키고 있는 견인차이자 주체라는 뜻이다.

엔고는 일본 은행들의 달러기준 대출규모를 늘려주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
콴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1달러당 140엔대에 머물러 있던 엔화가 105엔대로 절상됨으로써 일본은행들
은 무려 40조엔정도의 미 달러기준 대출여력을 확보하게 됐고 이에 따라
여타 아시아채무국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 세계은행연차총회를 위해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관료들은 한국경제회복이 김대중 대통령의 지도력과 개혁의지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설명하기에 바쁘다.

그런 면도 없지는 않다.

6백5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는 대우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위험도(sovereign risk)를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게 한 요인인지 모른다.

물론 막대한 보험성격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을 지불한 후의
결과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국제금융인들이 개별기업에게까지 그런 안전판을 확대 적용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빛은행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DR 발행사례에서 읽을 수 있듯 미세한
이자까지 따지는 국제투자자들은 지도력이라든가 개혁의지같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에 구애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리스크가 큰 만큼 더 많은 이자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경기회복의 단꿈속에 빠져 있는 사이 국제금융시장에서 곤욕을
치러야 하는 것은 기업들 뿐이라는 뜻이다.

재벌개혁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동안 거론되어 온 정치권, 관료사회 특히 검찰과 세정 등 공공부문
의 병행개혁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어 버렸다.

어느새 재벌개혁만이 국가의 유일무이한 목표인 것같은 착각을 느끼게 할
정도다.

그런 와중에서도 해외투자자들의 최대관심사는 대우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엔고와 현금젓소의 위력도 대우문제 해결없이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워싱턴을 찾는 한국관료중 이 문제에 대해 속시원히 말해주고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워싱턴 특파원 양봉진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