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배 < 정치부장 >

올해도 어김없이 29일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국회의원들은 3백52개 기관에 대해 20일 동안 국내외에서 감사활동을
벌인다.

민주국가에서 국정감사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국민들은 국정감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답답증을 호소한다.

국정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행정에 비효율은 없는지, 비리는 없었는지,
공복의 자세는 제대로 서있는지, 정책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지는 않았는지를
따지는 국정감사에 기대를 걸고 지켜봐야 하는데도 말이다.

과거 오랜 세월동안 보아왔던 구태가 이번에도 재연될게 뻔하다고 예단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올해는 정치 경제 사회분야에서 그 어느때 보다도 현안들이 많다.

도.감청문제, 대우그룹 처리, 재벌그룹의 구조조정, 그룹총수의 탈세,
파이낸스 사태, 계좌추적 남용, 방만한 공적자금 투입, 공기업 구조조정,
현대전자 주가조작, 옷로비 및 파업유도, 인사정책, 동티모르 파병 등이
뜨거운 이슈들이다.

어느 것 하나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따라서 국감장은 막가파식의 행태와 한건 올리려는 폭로전이 횡행할 것이
라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있다.

게다가 내년 총선을 앞둔 15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이어서 의원들의 영웅주의
심리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점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이러한 조짐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여야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

야는 창을 날카롭게 갈고 여는 방패를 단단하게 점검하고 있다.

의원들은 기선제압용으로 국감에 앞서 설익은 자료들을 무책임하게
남발하면서 언론 플레이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상임위 소속을 바꾸고 상대의원의 공격에 맞설 수비의원도 정해 놓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새 천년을 90여일 앞두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채비를 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정치인들이 부패의 1순위로 꼽히고 개혁의 우선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의원 자신들이 이러한 국민의 원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라고 믿는다.

여론을 딛고 살아가는 의원들이 이를 모를리 없다.

따라서 의원들은 올해 국감을 통해 바로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는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새 천년의 국회상을 정립한다는 의원들의 자세교정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첫째는 정치공세를 벌이는 "정치감사"가 아닌 "정책감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정파의 이익에 매달려 파쟁을 일삼는다면 당장 내년 총선에서 심판을 받을
것은 뻔한 일이다.

한 사안을 놓고 야는 행정부를 무조건 비판하고 여는 무조건 두둔하려
든다면 파행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로 인한 결과는 멱살잡이와 육탄전이다.

둘째는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다.

수박 겉핥기식의 질문, 원론적인 질문, 중복되는 질의등은 국감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시간만 허비할 뿐이다.

충분한 자료준비와 현장답사등이 선결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소관 기관들에게 수많은 자료를 요청해 놓고도 이를 소화하지 못해 전전긍긍
하는 의원들을 그동안 어렵지 않게 보아왔다.

셋째는 도덕성이다.

추후에 인사받기를 유도하는 듯한 질문을 한다거나 개인의 이익과 관계되는
언행은 철저히 피해야 한다.

이번 지방국감에서도 의원들은 철저히 나뉘어 있다.

자기 지역구에 있는 기관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회의 의원들은 전라도로, 한나라당 의원들은 경상도로 떼지어가고 있다.

이 속셈이 뻔한 일을 두고 국민들이 뭐라고 할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았느
냐고 반문하고 싶다.

넷째는 신사도를 지키는 일이다.

국민들은 품위와 격식을 갖춘 의원들을 보기 원한다.

선진국의사당에서 의원들이 경칭을 써가며 의사진행하는 광경은 보기에도
좋아 보인다.

그렇다고 어물쩡 넘어가는 일이 없다.

논리적인 추궁으로 모든 비리는 한점 의혹없이 파헤쳐진다.

선직국의회를 배운답시고 뻔질나게 드나들던 의원들은 과연 무엇을 배우고
왔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국감을 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당장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파헤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해의 지적사항에
대해서 어떻게 개선되고 시정이 됐는가를 따져야 한다.

국정감사를 하는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그리고 문책범위도 분명히 해야 한다.

소속 기관장이 직무를 유기했다거나 고의로 회피했다는 혐의가 있다면
해임을 건의하는 수순도 지체없이 밟아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올해 국감에는 시민단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감현장을 같이 돌며 의원들을 평가해 양질과 저질의 의원들을 가려내겠다
는 것이다.

유권자로서 당연한 권리다.

이제 우리 사회도 성숙된 만큼 의원들이 과거와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유권자들이 더이상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의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번 국감이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사랑받는 계기가 되느냐, 아니면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냐 하는 것은 순전히 의원들의 몫이다.

< youngba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