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경제교류 본격화 ]

한국경제계는 일본과 경제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66년2월 사절단을 일본에
파견했다.

65년12월초, 미국경제사절단으로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필자는 도쿄에
잠깐 머물렀다.

새해 있을 예정인 "한.일 민간합동회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6월22일 "한일협정"도 정식으로 조인됐다.

경제사절단 파견으로 미국과 경협의 문을 여는데도 성공했다.

이제부터는 일본과 경제 거래를 본격화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학생과 재야의 반일 감정은 좀체 가라앉질 않았다.

일촉즉발의 위기속에서도 경제인협회는 62년9월, 우에무라 사절단을
시작으로, 도고 사절단(64년4월)에 이르기까지 4차에 걸쳐 일본 경제계
중진들을 대거 초청했다.

이제는 일본 경제계도 한국경제사절단의 일본 방문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만 해도 일본문제는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불미스러운 과거사"에서 오는 굴절된 감정, 우월감 및 열등감의 뒤섞인
심리 등 신경써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김용환 회장을 사절단장으로 모실 수 있어 다행이었다.

김 회장은 학식 식견 지도력 면에서 일본 재계지도자들과 당당히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분이었다.

일본 게이단렌의 일.한경제협회 간부들과 "합동회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협의했다.

우선 회의 명칭은 "한.일 합동경제간담회"로 정하고, 66년2월 중순 도쿄와
오사카(대판) 두곳에서 개최키로 한다.

안건은 경제협력 산업.기술 무역증진 등 세가지로 하고 이들을 각
분과위원회에서 토의키로 했다.

지금 되돌아 보니 상식 수준의 논의였지만 당시로서는 콜롬버스의 계란
이야기처럼 매사 새로운 것들이었다.

사실 경제인협회는 물론 한국경제계도 외국 경제계와 "합동회의"를 한
경험이 전혀 없던 시기였다.

이런 이유로 회의양식 절차 안건 심지어 공동성명 모양새까지 앞으로의
모델이 된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준비했다.

한국경제계의 국제협력추진 초석과 모델을 마련하는 것과 같았다.

또 머지 않아 간담회를 "한.일경제협력위원회"로 정착시킬 것을 염두에
뒀다.

새해 들어 연일 한.일합동회의 준비에 골몰하고 있을 때 대한상의와
무역협회도 이 합동회의에 참가하겠다고 나섰다.

어떻게 한.일경협을 경제인협회가 독식 할 수 있는냐는 주장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신문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경제 3단체 한.일문제 불화 운운"으로 시작하더니, "3단체 헤게모니 싸움",
"이권 다툼"으로 까지 비화시켜 마구 기사화했다.

이쯤 되니 상공부에서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66년1월28일, 박충훈 상공장관은 3단체장 협의회를 마련토록 했다.

그런데 경제인협회에서 사무국장인 필자를 나오라고 했다.

송대순 상의회장, 이활 무협회장 앞에서, 박장관은 딱 부러지게 "한.일합동
경제회의는 그간의 경위를 감안하여 경제인협회가 주관하고 다른 단체는 함께
참여토록 해주시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장관은 송 회장, 이 회장에게서 다짐을 받다시피 했다.

그리고 필자에게 "오늘 합의내용을 곧 신문에 그대로 발표해 주시오"라고
부탁했다.

송회장, 이활 회장은 이에 대해 아무 말씀이 없었다.

그러나 필자는 송대순 회장에게는 특히 안됐다고 생각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송회장은 상의회장으로 60년 한국경제인협의회 창립때
발기인이 되셨고, 이병철 회장때 협의회 부회장도 겸임했다.

이런 관계로 상의 내에서 송회장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듣고 있던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한.일문제마저 경제인협회 주관이 되면 송회장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 질 것을 염려 했었다.

그래서 필자의 판단으로 경제인협회가 한.일경협을 주관한다는 신문발표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한.일경협을 놓고 두고두고 말썽이 됐다.

결국 "공동주최 단장은 3단체 회장이 윤번제로 맡아서 한다"는 일본측 마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상한 모양으로 3년후부터 합동회의가 개최된다.

이때 필자는 송양지인 즉 지나친 인정이나 양보는 화를 자초한다는 중국
고사를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첫 한.일 합동간담회는 "경제인협회 주관, 김용완 회장 단장"에 아무
잡음 없이 준비됐다.

<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