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시대 대사상가인 홉스와 루소.

두 사람 모두 "인간의 본성"에 관심을 가졌다.

홉스는 인간의 "자연상태"(본성)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란 유명한
말로 표현했다.

반면 루소는 "평화로운 자연으로 돌아가라"며 인간이 가진 선함을 강조했다.

새 천년의 턱마루에서 많은 미래학자들은 글로벌화된, 디지털화된 미래사회
를 그려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미래사회를 "흡사 전쟁처럼 격렬한 경쟁이 벌어지는 사회"라고
전망한다.

또 다른 이는 "네트워크를 통해 신뢰가 흘러다니는 신용사회"가 될 것으로
진단한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밤이 되면 초롱초롱 별빛이 흐르는
그곳에서 (주)엘테크연구소의 이관응 소장을 만났다.

그는 얼마전 서울 강남을 떠나 용인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그에게 "글로벌시대 기업경영은 무엇이 중요하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없이 "네크워크"라고 대답했다.

이 소장은 웹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가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가를 전자메일
을 활용해 보여 주었다.

전자메일로 세계 각지의 지인들에 인터넷의 유용성을 묻는 질문을 보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답신들이 왔다.

미국 댈러스의 회계컨설팅기업 언스트&영에 근무하는 아미 볼드랜(28)은
"인터넷은 정보를 얻는 가장 훌륭한 창고이며 거래시간을 단축시키는 새로운
스탠더드(표준)"라고 적어 보냈다.

브라질 포탈레자에서 온라인서비스업체에 다니는 탈레스 파니기데스(32)는
"공짜에 가까운 비용으로 정보를 얻고 대화를 나눌수 있는 채널은 인터넷뿐"
이라고 답했다.

또 아랍에미레이트공화국(UAE)의 샤르자대학 공대교수인 플로리안 테첼은
"지금 다니는 대학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인터넷을 통해서였다"면서 "저녁시간
이면 늘 들리게 되는 동네 길모퉁이의 카페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답변이 오기까지 질문을 담은 전자메일은 미국의 친구, 친구의 친구,
그 아들, 아들의 친구식으로 흘러다녔다.

서울 중림동의 한 허름한 설렁탕집에서 만난 또다른 미래학 전문가는
"글로벌시대 기업경영은 어떻게 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난데없이 칭기스칸
의 대장정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칭기스칸은 뼈대있는 집안 출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하장수를 선발
하는데 오로지 실력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누가 싸워서 이길수 있느냐가
선발기준이었습니다. 이렇게 뽑은 장수에게 병력과 식량을 주고 "동북방면은
누구, 서북방면은 누구" 하는 식으로 알아서 공략하도록 했습니다. 출병할
때는 반드시 가족들을 데리고 가도록 했습니다. 칭기스칸은 공정한 인재
선발과 대폭적인 권한 이양, 부하에 대한 굳은 신뢰를 통해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것입니다"

그는 글로벌 시대의 경영은 이처럼 "유목민족식 경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광속경제로 일컬어지는 디지털화된 사회에서 결제서류 만들고 도장찍기
위해 이틀 사흘 기다려서는 결코 경쟁에 앞서 나갈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반장 마인드"도 강하게 비판했다.

이장을 하든 줄반장을 하든 꼭 자신이 우두머리가 돼야 한다는 의식이
독불장군식 경영을 불러 실패를 자초하고 있다는 견해다.

글로벌시대, 인터넷시대는 "작은 것이 큰 것을 무너뜨릴 수있는" 매력을
가진 사회다.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처럼 작은 회사도 네크워크를 잘만 활용하면 큰
회사를 이길 수 있다는 얘기다.

중요한 점은 네트워크를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들 것인가다.

네트워크를 내 것으로 만드는 최상의 방법은 사이버 세계에서 신뢰를 확보
하는 것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사이버) 사회에서 신뢰의 중요성은
오프라인(현실) 사회에서보다 더 커진다.

아마존(서점) E베이(경매회사) 같이 일찌감치 인터넷기업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회사들은 남들보다 한발 앞서 네크워크와 다가올 신뢰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따지고 보면 칭기스칸은 정벌의 최일선을 담당했던 부하장수들과의 사이에
신뢰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일견 위험해 보이면서도 유연한 정벌
시스템(경영시스템)을 갖출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글로벌시대에 네트워크와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식자는 한
두사람이 아니다.

미국 시스코(Cisco)사의 챔버스 사장은 "인터넷에 의해 사람들이 살아가고
일하며 즐기고 배우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미 MIT대 교수는 네트워크 사회의 파괴적인 잠재력을
"리히터 규모 10.5에 이르는 대지진"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또 피터 드러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란 책에서 "다가오는 밀레니엄은
정보와 지식을 활용하여 자기 일에 부가가치를 높이는 지식근로자들이 주도
하는 사회이다.

지식의 창출과 공유 재창출이 모두 사람에 의해 이뤄진다.

때문에 초일류기업은 사람과 신뢰를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여긴다"고 말하고
있다.

신뢰는 무엇으로 쌓여 가는가.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천이 뽑은 일하기 좋은 1백대 기업을 매년 조사하고
있는 로버트 레버링은 신뢰를 산출하는 3대 항목으로 "진실, 존중및 공정"을
꼽고 있다.

평범한 3개의 항목이 글로벌 시대에서도 역시 신뢰를 얻을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이 3가지 항목에 비춰볼때 한국 사회는 어떤가.

굳이 "역사의 종말"을 쓴 일본의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지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은 아직 "신뢰"란 사회적 자본이 아주 빈약한 사회다.

< 박재림 기자 tr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