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사태와 금융대란설로 어수선한 시기에 모처럼 희소식이 나왔다.

1년여를 끌었던 제일은행 매각 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아직 본 계약을 남겨놓긴 했으나 중요한 조건은 이미 합의됐다.

그 동안 협상을 오래 끌다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합의가 거의 다 이루어졌다가 깨지기도 했다.

아예 매각을 포기하자는 얘기도 나왔었다.

수천억, 수조 원에 이르는 매각협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실 우리 정부와 금융계는 과거에 이런 협상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경제위기 이후에야 몇가지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제대로 협상이 이루어진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민간기업이 외국에 팔린 사례는 있으나 정부가 나서서 매각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은행과 대한생명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정부가 막대한 국민세금을 쏟아붓고 외국자본에 팔려고 하지만
원매자가 선뜻 나서고 있지 않다.

이에 비하면 제일은행 매각 협상의 타결은 일단 낭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제일은행 매각 협상에 관해선 꼭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다.

첫째는 과연 제대로 매각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제값을 받았는가, 제대로 경영을 할 사람들에게 팔았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너무 싸게 판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7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대형 시중은행의 지분 51%를 5천억원에 넘긴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숫자만 따져 보면 분명 헐값에 판 것이다.

들어간 돈에 비해 받은 게 너무 적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팔 심산이었다면 왜 여태까지 질질 끌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앞으로 2년동안 기업부도로 발생하는 부실채권은 우리 정부가
모두 사주기로 했다.

대우 등 워크아웃 기업은 3년동안 책임져야한다.

혈세로 막아야할 돈이 7조원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본계약을 맺을때 더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서 헐값에 팔았는지, 아니면 제값을 받았는지를 따지기는 어렵다.

손해를 보았는지, 이익을 보았는지는 미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윈윈 게임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제로섬게임이 되는냐에 따라
달라진다.

윈윈 게임이 되면 뉴브리지도 이익을 남기고, 우리정부도 그동안 들어간
국민의 혈세를 돌려받게 될 것이다.

대체로 정부는 제일은행 주가가 10배가량 올라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한다.

정부가 투입자금을 회수할 무렵 뉴브리지는 인수자금 5천억원, 추가출자금
2천억원 등 7천억원을 투자해 경영을 잘한 댓가로 7조원 가량을 벌어들인다.

부실채권처리에 들어간 돈은 뉴브리지와 무관하다.

정부는 공중으로 날아갈뻔했던 혈세를 건지고 뉴브리지는 경영성과로
투자금의 10배를 이익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말하는 윈윈게임의 내용이다.

그렇게 되기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일은행이 일류은행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매각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면 내년에는 외국인 은행장이 제일은행 경영을
맡게 된다.

외국인이 경영하는 대형 시중은행이 탄생하는 것이다.

임원이나 직원들도 일부는 외국인으로 바뀌게 된다.

무엇보다도 국내 은행들과는 다른 경영 방식이 선보일 것이다.

과거의 제일은행은 한국의 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시중은행의 표본이었다.

국내의 주요 대기업을 가장 많이 고객으로 확보한 금융기관의 하나였다.

유원건설 한보그룹등 외환위기 전에 쓰러졌던 여러 기업들이 제일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런 고객은 없다.

새롭게 고객을 만들고 새로운 전략을 찾아야한다.

제일은행을 인수하기로한 뉴브리지 캐피털은 바로 이런 점에서 걱정스런
대목이 있다.

뉴브리지는 은행이 아니다.

일종의 투자펀드다.

제일은행을 사서 정상으로 만든 뒤에 이익을 붙여 다시 파는 게 목적이다.

장기적인 경영플랜이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다.

정부 역시 이젠 제일은행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시장원리가 주도하는 금융환경을 조성해 금융기관의 경쟁력 향상을 유도해야
한다.

국내은행의 발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네덜란드의 ING베어링은행은 독특한 경영방식으로 세계적인 금융기관으로
성장했다.

네덜란드는 우리와 비교해 결코 큰 나라는 아니다.

국내 은행이 이렇게 경쟁력을 갖추기를 기대하는건 무리일까.

제일은행의 변화는 아마도 국내 금융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게될 것이다.

아직도 진행중인 금융개혁을 촉진하는 촉매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금융 공공부문 노사 기업개혁중 가장 잘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금융개혁도 최근에는 시들했던게 사실이다.

게다가 대우사태로 은행의 부실채권이 다시 늘어나고 채권시장은 마비상태에
빠져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제일은행이 뉴브리지에 인수되면 대우의 워크아웃작업도 보다 신속히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

< yg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