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파선 선장이 되어'' ]


김정숙 < 대구시 서구 평리1동 >


IMF이전 우리 가정은 갈매기가 노니는 고요한 바다를 순항하는 배처럼
행복했다.

처음 들어보는 IMF 태풍을 만나 선장역을 맡았던 남편은 실직을 당해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얼떨결에 선장역을 맡아야 했다.

그 이후 불과 1년 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갔지만 나에게는 마치
수십년이 흐른 것 같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도 더 길게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고통을 체험
했다.

남편의 실직후 다닌 나의 직장 생활은 그동안의 직장 생활과는 너무나
달랐다.

미혼시절에는 다녀도 되고 안다녀도 된다는 홀가분한 마음이어서 부담이
없었으나 생존을 위해서는 꼭 붙어 있어야 한다는 상황에 몰리면서 하루하루
직장 생활이 너무나 힘들었다.

혹시 유괴범으로 오인하는 것처럼 쳐다 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대할 때나
식당에서 일한다고 함부로 대하는 손님을 만날 때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집안의 경제 사정을 생각하면 그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수 없었다.

가슴 깊이 파고드는 아픔은 육체적 고통보다 몇배나 더 심했다.

신문지상을 통해 일가족이 동반자살을 했다거나 보험금을 타먹기 위해
끔찍한 범행을 했다는 기사를 접할 때는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생활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가정에는 서로를 위하는 사랑이 남아 있고 병들지 않은 건강한
육신이 있었기에 거대한 태풍속에 침몰되지 않고 이 만큼이라도 지켜 올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이번에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한 알뜰수기 공모에서 큰 상을 받고
나니 용기백배해졌다.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따뜻한 눈길로 지켜 보고
힘을 주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용기를 주고 앞으로 남은 난관을 극복하게 도와준 한국경제신문사
임직원께 감사드린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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