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의 국내 시판과 때를 같이해 심장병과 혈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보다 높아질 것 같다.

혈압은 정상이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고혈압이 더 위험한
것일까?

아니면 저혈압이 더 위험한 것일까?

경제의 흐름을 인체의 순환활동에 비유하는 경우가 흔한데 고혈압경제와
저혈압경제로 나누어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다.

40여년전 미국에서 성장론과 안정론간의 논쟁이 치열했을 때 실업의 고통을
중시해 경기확대를 주장한 쪽을 "고혈압 경제론"이라고 부르고, 반대로
인플레의 폐해를 강조하면서 경제안정을 지지한 쪽을 "저혈압 경제론"이라고
명명한 학자가 있었다.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면서 잠재력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성장을 계속하는
경우를 고혈압경제라고 한다면 최근의 미국 경제가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91년 2분기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 미국 경제는 벌써 9년째 고도성장
궤도를 밟고 있다.

그러나 고혈압경제에는 주식 및 부동산가격의 급등, 물가 불안, 국제수지
악화라는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어서 현안이 되고 있다.

우리 경제와 대조해 본다면 미국 경제는 현재 네가지 고민을 안고 있다.

그중에서 두가지는 행복한 고민이랄수도 있겠지만 풀어가기에 쉬운 문제가
아닌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첫째, 중앙은행 총재격인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의 신뢰도가
너무 높아 통화정책의 파급효과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고혈압경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인상이 필요하므로 FRB는 금년들어
두번이나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그러나 그린스펀이 경제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낙관론이 우세하기 때문에
주식가격은 오히려 오르고 달러화가치는 떨어지는 기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더욱 강력한 긴축조치를 취한다면 경기의 급격한 냉각을 몰고
올 위험이 있어서 고민인 것이다.

둘째, 경제호황으로 세금은 잘 걷히는 반면 실업자 감소로 정부지출은
오히려 줄어드니 재정흑자가 확대돼 이의 처리가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올 한해 흑자가 1천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며 앞으로도 10년이상 대규모
재정흑자가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집권 민주당측에서는 정부지출확대쪽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공화당쪽에서
는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고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셋째, 무역적자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중 미국의 무역적자는 사상최대규모인 2백46억달러를 기록함으로써
금년중 적자폭은 작년의 2배 수준인 3천억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교역대상국들과의 심각한 무역마찰을 예고해 주고
있다.

넷째, MIT의 경제학 교수인 폴 크루그먼이 미국 달러화와 주가의 폭락을
예언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그는 향후 1년에서 1년6개월안에 달러가치는 40%, 미국주가는 10%이상
급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경제가 고혈압경제라면 작년까지의 일본경제와 한국경제는 저혈압경제
(아니면 빈혈경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은 마이너스였고 실업률은 크게 치솟았다.

저혈압경제인 우리경제 또한 만만치 않은 고민거리가 있다.

미국경제와 대비해 본다면 우선 정책당국의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통상적이고 시장경제적인 정책수단은 먹혀들지 않으므로 개혁적이고 강압적
인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불황으로 세수가 줄어든 반면 금융구조조정과 실업대책때문에 정부지출이
크게 늘어나 재정적자가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두번째 문제
이다.

다음 세대에 빚부담을 주지 않도록 적자관리를 할 일이 고민거리인 것이다.

반면에 물가는 비교적 안정된 움직임을 보여왔고 국제수지도 흑자로 돌아
섰다.

그러나 흑자폭이 크다보니 선진국과의 무역분쟁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점이 (행복한)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경제의 전망에 대해 크루그먼을 비롯한 많은 외국학자들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미국경제와의 또다른 차이점이 되고 있다.

사실 최근 한국경제는 성장률이 9.8%에 달하고 있고 가동률 또한 80%를
넘어서고 있어 저혈압상태에서 급속하게 벗어나고 있다.

이것과 관련해 글 첫머리의 의문으로 되돌아 가본다면 인체에 있어서나
경제에 있어서나 고혈압 또는 저혈압 그 자체가 크게 위험하다기보다는
혈압이 급격하게 변화할 때가 가장 위험한 상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의 정책당국이 경제의 연착륙을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우리 정책당국도 경제의 활력회복에는 계속 정진하되 물가불안 등 경제
불안정 요인을 해소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