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던 상장기업들이 2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 해 상반기 중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던 12월결산 상장법인들이
올 같은 기간에는 사상 최대의 흑자를 냈다.

증권거래소 등 관계기관에 따르면 5백23개 상장법인들의 경상이익은 지난 해
5조원 이상 적자에서 올해 9조원에 가까운 흑자로, 10조원에 가깝던 당기순
손실은 6조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으로 반전됐다.

그야말로 지옥이 천당으로 바뀐 셈이다.

자산매각.재평가.유상증자 등 재무구조 개선노력에 힘입어 자기자본은
총 1백28조원에서 1백98조원으로 55%나 늘어났다.

반면 총 부채는 2.8% 증가하는데 그침으로써 평균 부채비율(금융업 제외)도
3백29%에서 2백8%로 대폭 낮아졌다.

지난 해에는 1천원어치를 팔면 18원의 손해를 봤지만 올해에는 27원의
이익을 낼 정도로 수익성도 개선됐다.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상장기업들의 경영실적이 크게 좋아졌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순이익이 크게 늘었음에도 매출액이 4.9%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17.2%나 줄었다는 사실은 장사를 잘 해서 경영실적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때문에 흑자의 빛이 바랬다는 혹평도 나온다.

상반기 실적호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자산매각 등 활발한 구조조정
노력이었다.

그러나 저금리와 환차익 등 외부환경의 덕도 못지 않게 컸다.

실제로 제조업의 금융비용은 1조4천억원이 준 반면 환차익은 2조원이
넘었다.

출자지분에 따라 관계사의 실적이 모기업에 반영되는 회계방식(지분법)에
따른 유가증권 평가순이익 역시 증시활황에 힘입어 1조2천억원이 넘었다.

자산처분 이익은 무려 3조9천억원으로 당기순이익 6조원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기업들이 과잉 중복투자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는 등 내실을
다짐으로써 체질을 강화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내수경기가 일부 활황을 보이고 있음에도 경기가 IMF사태 이전 수준
으로 완전 회복된 것은 아니며 기업들의 경쟁력 역시 흡족할만큼 강화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의 감소는 기업의 체질개선이 질적으로 미흡함을 말해준다.

경기회복세의 가속화 및 엔화강세 등을 예상한다 해도 상반기의 흑자기조가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자산매각이나 인원축소는 대충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도 상반기 실적에 자족해서는 안 된다.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 등 본연의 역할을 다하려면 연구개발(R&D) 투자와
설비투자를 늘림으로써 본질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