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채권단이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 문제로 삼성그룹에 대한 금융제제를
결정했다.

사재출연 2조8천억원을 문서로 확약하지 않을 경우 삼성그룹에 대해 내주
부터 신규여신 중단 등의 제제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여느 재벌과 마찬가지로 삼성그룹도 대주주(총수+특수관계인)는 2%에 불과한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해 것을 감안하면 삼성차 경영실패에 대해 총수가
책임을 지라는 채권단의 요구는 일리가 있다.

국민감정에도 맞는 일이다.

문제는 채권 금융기관이 과연 이 회장에게 실패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요구할 자격이 있느냐는 점과 금융제제 방식 및 시기가 합리적이냐는 점이다.

경영실패로 말하자면 채권 금융기관은 할 말이 없게 돼있다.

자본금의 몇배에 해당하는 64조원의 공적자금으로도 부족해 1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의 추가투입이 논의될 정도로 채권금융기관은 경영실패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금융기관에서도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사재출연이 있었다는
얘기는 없으며 스톡옵션으로 몇백억원을 벌게 됐다는 얘기만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삼성자동차 부실대출에 대해서는 채권단도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따라서 채권단의 사재출연 요구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
임직원도 손실을 초래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채권단은 국민감정에 편승해 우월자적인 지위를 남용하는
불공정행위를 저지르는 결과가 된다.

금융제제 방식과 시기에도 문제가 있다.

설령 사재출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하더라도 사재출연은 어디까지나 이
회장 개인에 대한 문제이다.

개인문제로 삼성그룹 전체 계열사에 대해 금융제제를 가한다는 것은 이
회장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용할지는 몰라도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다.

삼성의 어느 계열사도 채권단에 대한 채무를 불이행한 적이 없으며 이
회장의 사재출연을 보증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대우사태로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 있는 요즈음 삼성그룹에
대한 금융제제 문제로 금융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는 것도 바람직
하지 않다.

삼성자동차 문제로 삼성그룹 전체가 금융제제를 받을 경우 금융시장은 일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재벌 총수의 경영전횡도 근절돼야 한다.

그러나 총수에 대한 사재출연이 공공연하게 강요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총수 개인이 아닌 그룹계열사에 대한 금융제제가 이루어지는 것도
시장경제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삼성그룹과 채권금융기관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최경환 논설위원 겸 전문위원 kghwchoi@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