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렌게티 국립공원은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설정된 구역이다.

그곳에는 사자 치타 등 육식동물과 얼룩말 영양 등 초식동물이 먹이사슬을
이루어 살고 있다.

해마다 건기가 되면 호수가 말라 겨우 손바닥만한 웅덩이로 줄어든다.

모든 동물이 물을 먹기 위해 하루에 한번은 그 웅덩이로 가야 한다.

그런데 그 웅덩이 입구에는 사자가 지키고 있다.

약한 동물들이 아무리 주의를 해도 사자의 공격으로 희생된다.

문제는 그 희생이 해마다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그 어떤 대책도 세울 능력이 없는 얼룩말이나 영양은 해마다 일정 수의
희생을 치르고서야 건기를 넘길 수 있다.

이 아프리카 정글의 자연법칙을 보면 우리나라의 행정수준도 그보다 별로
높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경기도 북부지방에 발생한 수해는 해마다 되풀이된 것이다.

설사 같은 지역에서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매년 어느 곳에선가는 수해를 입게 된다.

그러나 이런 자연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의 대응은 마치 그런 재해를
처음 당하는 것 같이 서투르다.

서툰 정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구호 대책이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재해
발생 초기에 정부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다.

이재민이 전적으로 몸으로 떼우는 상황이 매년 되풀이되는 것이다.

피해 주민들만이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왜 정부가
필요하며, 왜 평소 정부가 그들의 생활에 간섭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수해에서도 명확히 드러난 바와 같이 정부는 사전대비도
소홀했고 사후대책도 세우지 못했다.

지난 수해로 무너진 댐조차 제대로 복구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미리 마련된 대비책이 거의 없었다.

생존에 필수적인 마실 물도 공급되지 못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또 덮고 잘 것도 없이 이재민은 몸으로 그 모든
고난을 감당해야 했다.

아기가 먹을 분유나 우유도 공급되지 못했다.

간이 화장실이나 샤워장을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정부는 그런 요구는
사치라고 치부하고 무시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최소한의 설비가 아닌가.

여름철 수해가 어느 특정 지역에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정부는 어느
해에도 대비책을 세워두지 못했다.

이재민 개개인에게 지급할 필수 품목을 개인 단위로 미리 포장해서 보관하고
있다가 수해가 발생해 임시 대피처로 피난함과 동시에 지급돼야 할 것이다.

그 포장내에는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들, 예를 들어 치약 칫솔
비누 수건 속옷 모기약 응급처치약품 화장지 등이 들어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담요 베개 옷 비옷 등이 동시에 지급돼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고위관료나 정치인들은 수해 지역을 사진이나 찍는
기회로 알고 찾았다.

그들을 태울 헬기나 자동차는 있어도 구호품을 실어나를 운반수단은
부족하다.

고관이 수해지역을 원래 상태로 구경해야 한다고 쓰레기 치우는 작업도
일부러 하루를 늦췄다는 소문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이 사회의 지배 계층은 생색을 내는 데는 익숙하지만 정작 일을 하는 데는
서투르기 짝이 없다.

그들은 재해를 당하고 난 다음 으레 신속한 복구나 충분한 지원을
약속하지만 공허하기만 하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세렌게티 국립공원의 말라가는 웅덩이 옆에 자리잡고
앉아 물을 마시러 오는 약한 동물을 노리는 사자를 보는 것 같다.

그들은 국민들로부터 희생만 강요하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권력 쟁탈에만 관심있는 정치인은 민주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도 지도능력과 도덕성을 회복하지 못한 정치인은 퇴장시켜야 한다.

전통적인 관료우위 발상도 폐기돼야 한다.

공무원이 되는 것이 오로지 안정적 직업을 얻는 수단이거나 국민을 속이고
이권에 개입해 치부하는 기회로 삼거나 또는 상급자에게 충성해 출세나 하는
곳으로 착각하는 관리는 모두 퇴출돼야 한다.

정부가 마치 식민지시대의 총독부와 같아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정부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다.

이제는 정치와 관료가 민주사회에 맞게 변해야 한다.

< chungc@ soback.kornet.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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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육사,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영국 뉴캐슬대 정치철학 박사
<>육사 경제학과 교수 역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