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 경제평론가 >


지역 감정은 우리 정치 현실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늘 나오는 말이다.

실제로 그것은 우리 정치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해왔다.

오래 이어진 "3김시대"만 하더라도 그것을 낳고 떠받쳐온 힘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감정이었다.

이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 남부 지역의 지역
감정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다시 정치 무대에 나서면서 지역 감정은
정치적 논의들에서 중요한 자리를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지역 감정이란 말은 너무 거칠고 부정확하게
쓰인다.

그래서 흔히 그것과 별다른 관계가 없는 사회적 해악들의 원인으로
비난받는다.

정치가 어지러운 지금 지역 감정의 성격과 위험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는
것은 그래서 작지 않은 뜻을 지닐 것이다.

정색하고 들여다보면, 우리는 지역 감정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모두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만, 그것이 또렷한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장 무난한 정의는 "자기가 사는 곳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애착이 정치에서, 특히 선거와 같은 행사들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 감정은 자연스럽다.

지역감정에 관한 논의에서 이 점은 강조돼야 한다.

자신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곳과 거기서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애착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개인들이 추구하는 자기 이익이 확대된 것이고,
본질적으로 애국심과 같은 감정이다.

자기 이익이 확대된 것이므로, 지역 감정은 선거와 같은 정치 행사들에서
자기 지역 사람들을 지지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물론 우리 나라에서만 나오는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 현상이다.

출신 지역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는 후보를 가리키는 영어의 "인기있는 아들
(favorite son)"은 이 점을 일깨워준다.

이렇게 보면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남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호남
에서, 그리고 김종필 총리가 호서에서 압도적 지지를 누려온 것은 부자연
스러운 일은 아니다.

호남사람들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줄곧 보여온 비정상적으로 높은 지지율도,
호남에 대한 차별이 상당했고 "광주의 비극"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비정상적
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렇게 자연스럽고 보편적이므로, 지역 감정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회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다른 힘들의 도움을 받아 상당히 강화되고 체계화되어 "지역주의
(regionalism)"의 모습을 했을 때, 지역 감정은 비로소 사회에 대한 위협이
된다.

지역주의는 "문화 역사적 배경, 또는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지역에 대한
의식이나 충성심"을 뜻한다.

지역주의가 거세지면 사회로부터 떨어져나가 독립하자는 분리주의
(separatism)로 나아갈 수 있다.

소련이나 유고슬라비아의 붕괴과정에서 잘 드러났듯이, 한 사회가
갈라지도록 만드는 힘은 단순한 지역적 거리가 아니라 인종적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 차이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와 발트해의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아직 한 사회를 이루고 있지만 러시아에 아주 가까운
발트해 삼국은 떨어져나가 독립했다.

보스니아 내전은 같은 곳에서 살아온 보스니아 주민들이 주로 종교적
차이에서 서로 싸운 것이다.

둘러다 보면 다른 면들에선 안정된 사회들에서도 지역주의는 사회를 위협할
만큼 거세고 분리주의로 악화된 경우들도 많다.

지금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와 같은 나라들은 뿌리깊은
지역주의와 씨름하고 있으며 벨기에와 캐나다는 분리주의가 큰 세력을 얻어서
언제 나라가 나뉠지 모르는 형편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지역 감정은 어떤 기준으로 재더라도 잔류수준을 크게
넘지 않는다.

물론 사회에 대한 위협이라고 할 수도 없다.

흔히 "망국병"이라고 일컬어지지만, 모든 면들에서 보기 드물게 동질적인
우리 사회에서 지역 감정이 지역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분리주의자들이 세력을 얻는 경우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실은 지역 감정이 우리 사회의 큰 병폐라고 걸핏하면 소리높여 외치는 것이
오히려 사회에 해롭다.

부정확한 진단이 옳은 처방을 낳는 경우는 드물지만, 지역 감정의 경우는
병보다 못한 처방들이 난무하는 형편이다.

지역 감정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을 늘리는 데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자연스럽고 잔류 수준을 크게 넘지 않는 지역
감정을 아예 없애자고 나서는 것은 그냥 두면 저절로 나을 상처를 덧나게 할
수도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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