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례 < 인텔코리아 홍보부장 >

외국 회사의 마케팅부서 특성상 나는 대부분의 업무를 인터넷과 E메일을
통해 처리하곤 한다.

비즈니스 메일을 처리하면서 항상 드는 느낌은 인터넷과 E메일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점차 없애가고 있다는 것이다.

몇년전 내가 미국에서 유학을 할 때다.

타국에 혼자 떨어져 바쁘게 공부를 하면서 어쩌면 꽤나 힘들었을 유학생활을
잘 견딜 수 있도록 많은 힘이 된 것은 당시 부모님께서 하루가 멀다 하고
띄어 보내주신 편지들 덕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학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변변히 답장 한번 못해 드렸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곧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줄곧 내 일에만
파묻혔다.

그러다 며칠 전 우연히 달력을 보고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이 곧 다가옴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무엇인가 의미있는 선물을 해드려야지...

그런데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손님이 주문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준다는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했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청혼을 했다는
남해의 푸른 바다를 생각해냈다.

남해 바다처럼 파란 소파 커버를 사기로 했다.

연애시절의 부모님이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을 스캔한 후 이미지를 쇼핑몰에
전송하고 인적사항을 적어넣었다.

그렇게 하여 그 파란색 소파 커버를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에 배달이 되도록
주문했다.

그날 저녁, 나는 조그마한 케이크를 사들고 집에 들어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부모님께서 파란색 소파에 앉아 환하게 웃고
계셨다.

작은 바닷가에 앉아 있는 것처럼...

"얘야, 바쁜데 언제 이런 거 사러 다닐 시간이 있었니. 또 커버에 사진을
씌우느라 고생많이 했겠다"

어머니는 웃으며 물어보셨다.

나는 "어머니, 저는 회사에 앉아서 컴퓨터로 주문만 한 걸요"라고 말했다.

나의 대답에 부모님께서는 요즘 세상에 컴퓨터가 못하는 것이 없다고
감탄을 하신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점차 생활 패턴이 바뀌어 가고 있는 요즈음,
사랑을 전달하는 방식은 바뀌어도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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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