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창균 <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 ckche@hri.co.kr >

최근 한국은행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중심으로 경기 과열에 대한
우려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경기 과열을 염려하는 까닭은 그에 따른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경기 과열 양상이 지속될 경우 수요가 우리 경제의 공급능력을 초과해
인플레 압력이 가시화될 것이다.

또 임금이 오르고 지가가 상승하는 등 과거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점이던
고비용구조가 재현될 우려도 높다.

특히 수입이 크게 늘어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위협받을 수 있고 여러가지
악재가 겹칠 경우 때에 따라서는 제2의 환란이 재현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더구나 경기 과열이 현실화되기 전에 성장 속도를 조금씩 누그러뜨리면서
경기를 연착륙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과거 80년대 말 3저호황이나 94년
반도체 호황 관리의 실패 경험에서 절감했던 것처럼 과열뒤에 맞이할 불황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경기에 거품이 발생할 경우 기업의 자산가치에도 거품이 생겨
기업의 구조조정 노력이 저해될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따라서 경기 과열 조짐이 나타난다면 예방적 차원의 통화정책과 같은 정부의
선제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어떤 정책이건 시차가 있으므로 경기 과열 양상을 확인하고 난 후 긴축정책
을 펴는 것은 자칫 정책효과가 불황기에 나타나 오히려 불황의 골을 더욱
깊게 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우리 경제에 과연 과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단순히 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높아졌다는 것만으로 과열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98년 경제가 극도로 부진했기 때문에 현실경제 여건이 조금만 개선되더라도
전년동기 대비로 표시되는 경제지표들은 크게 좋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올해의 성장률이 당초 전망보다 몇 % 포인트 높아지는 지는 사실상
생각만큼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전년동기대비로 표시되는 성장률 지표보다는 실업률이나 제조업 평균가동률
과 같은 지표들이 오히려 현재의 경제 현실을 진단하는 데 더 유용할 수
있다.

꾸준히 높아지고는 있지만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5월 현재 76.5%로 외환위기
이전 평균인 80%내외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실업률도 계속 하락하는 추세에 있긴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며 특히
상용근로자수가 오히려 줄어드는 등 고용불안 양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특히 금년들어 늘어난 취업자 중 절반 이상이 일용직 근로자임을 감안하면
정부의 공공근로사업에 따른 일시적 효과로 실업이 줄어들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이렇게 경제 전반의 공급 여력이 여전히 풍부한 상황에서 과열을 말한다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다.

실제 올해 경제가 7% 이상 성장한다 하더라도 GDP갭은 여전히 마이너스를
나타낼 것으로 보여 아직도 디플레갭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열 조짐의 또다른 근거로는 소비 거품에 대한 우려가 거론된다.

그간의 경기회복세를 견인해왔던 것이 소비임은 분명하지만 아직 소비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90년대 민간소비증가율이 8~9% 수준에 이른 적도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금년 1.4분기의 6.3% 증가는 그렇게 염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또 절대규모로는 아직 외환위기 이전인 97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향후 소비심리의 회복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연소비가 금년 상반기중 대개 마무리되었으며 고용사정이 여전히 좋지
못하고 소득증가를 초과하는 소비증가가 계속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증시의 거품 가능성도 과열 우려의 근거로 언급되고 있다.

주가 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고 상승세가 지나치게 일부 종목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거품이 염려되는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주식싯가총액 3백조원은 우리 경제 규모에 비추어 결코 과도하지 않다.

미국의 주식싯가 총액이 GDP의 2백%인 점에 비추어 보면 아직 GDP의 3분의2
수준에 불과한 한국의 경우 당장 거품을 걱정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

현재까지는 아직 과열 우려가 크지 않다고 판단되지만 설사 경기가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금리 인상을 통해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자칫하면 경기가 갑자기 식어버릴 수 있다.

소비세 인상 이후 경기가 장기간 불황국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과거
일본의 경험을 되풀이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 비용도 급격히 늘어나게 될 것이다.

또 최근 회복기미를 보이는 설비투자를 다시 위축시켜 가동률을 높이는
것만으로 수요 증대에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올 때 오히려 공급의 애로
(bottleneck)에 의한 인플레 압력에 시달리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통화당국이 과열을 우려하는 의사표시를 하는 등
공시효과(announcement effect)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경기 속도 조절을
위해 바람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