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상선약수"라는 말이 나온다.

최고의 선은 흐르는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다른 말로 하면 순리요 상식이다.

"상식선에서 모든 일이 이뤄지는 것이 가장 선이다"는 의미다.

노자의 말에 따르면 최상의 사회는 바로 "상식이 통하는 열린 사회"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나 금력 폭력이 통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독단보다는 중지가 중시된다.

민주적 토론의 분위기가 자리잡고 건전한 비판이 허용된다.

"열림(Openness)"은 21세기 디지털사회의 화두다.

문화도 예술도 기업경영도 정부도 활짝 열어제치지 않고선 생존할 수가
없다.

연다는 의미는 곧 투명해진다는 것과 통한다.

흔히들 미국과 일본 경제간 역전 드라마의 동인으로 미국 정보통신산업과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든다.

일본 매킨지 컨설팅의 컨설턴트인 한다 준이치는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답을 찾는다.

바로 열림 여부가 미.일간 격차의 근본요인이었다는 것이다.

폐쇄적이고 내부지향적 시각에서 자기완결을 지향하는 집합체적 특성을
갖는 일본의 닫힌(폐쇄적) 시스템은 산업화 사회에선 힘을 발휘했으나
디지털 시대엔 오히려 경쟁력 약화요인이 되고 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반면 미국기업과 정부가 지향한 열린 시스템은 내부의 비효율적 서비스를
외주화하고 전략적 제휴를 통해 강점을 키워 나감으로써 이빨빠진 호랑이
였던 미국을 다시 세계 최강국의 위치로 올려 놓았다고 말한다.

열린 사회의 힘은 이노베이션, 즉 창조적 파괴의 여건을 만드는데서 나온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사회학자 칼 포퍼가 열린 사회의 주요 특징
으로 언급한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이노베이션을 가능하게 만든다.

잭 웰치 GE 회장의 경영모토중 하나가 "누구에게나 솔직하라 (Be Candid
with Everyone)"인 점은 이런 맥락에서 수긍이 간다.

열린 사회인가 아닌가는 종종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잣대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선진사회일수록 열린 사회이다.

열린 사회는 상식과 정직이 통하는 사회다.

이에 비해 폐쇄사회는 "지대 추구(Rent-seeking)" 행위가 횡행한다.

지대 추구는 최근 한국에 온 공공경제학자인 털록(G Tullock)이 창안해낸
개념이다.

지대 추구란 생산(파이)은 증가하지 않는 상태에서 독점적 권리만을 얻고자
하는 행위다.

독점적 권리를 위해 쓰이는 비용은 가치를 창출하는데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진입제한이 돼있는 사업권을 따려고 로비를 펼친다든지, 빅딜에서
서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행위가 모두 지대 추구의 일종이다.

털록에 따르면 지대 추구행위는 이중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킨다.

하나는 해당 집단들이 로비 과정에서 쓰는 자금 자체가 비생산적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로비 자금이 다른 생산적 용도로 사용됐을 경우 얻게 될 사회적
후생이 무산된다는 점이다.

일종의 기회비용이다.

국민의 정부가 내건 개혁의 지향점도 따지고 보면 "열린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만들기"로 요약할 수 있다.

기업경영 정부 사회 구석구석을 열어제쳐 투명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의 열림 정도는 낙제점이라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주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드러난 사실을 그대로 믿지 않는 반어적 사고가
일반화돼 있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개인 재산을 털어 회사 부채를 갚는다 해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기업을
세무조사하면 분명 밝혀지지 않는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대기업은 모두 악의 화신이고 중소기업은 전적으로 옳다.

불신의 벽은 높다.

굳이 털록의 얘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폐쇄사회의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막대한 자원이 낭비되니 경쟁력 또한 높아질 수 없다.

한 연구에 의하면 사회 각 구성원간 신뢰도가 높을수록 자본주의는 발전
한다고 한다.

싱가포르가 그렇고 미국이 그렇다.

남을 믿을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때 창의성과 의욕은 일어나는
법이다.

기업 경영만 홀로 열려선 소용없다.

정치권도, 정부 부처도, 각 개인도 열려야 한다.

편법과 묘수로 물든 한국을 상식이 통하는 열린 사회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 ph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