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주가지수가 280에서 1,000까지 숨가쁘게 줄달음질을 치는 동안 국내
채권시장도 질적으로 한단계 올라섰다.

전형적인 후진국형에서 선진국형의 시장으로 발돋움할수 있는 디딤돌도
만들었다.

우선 사상 처음으로 한자릿수 금리시대가 열렸다.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난 97년말 연30%를 오르내리던 회사채 수익률이
지난해 10월15일 연9.59%를 기록, 금리 한자릿수 시대의 막을 올렸다.

정부가 금리를 통제하던 시대에도 회사채 수익률이 한자릿수를 기록한 날은
없었다.

최근에는 연8%대 안팎에서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자릿수 금리는 기업의 금융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놨다.

지난해의 고금리는 기업들로 하여금 경영실적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나 한
자릿수 저금리는 올해 기업실적을 최고 실적으로 이끌고 있다.

증권사들이 투자유망하다고 추천하는 기업 치고 금융비용 절감의 혜택을
누리지 않는 기업이 없을 정도다.

올해 매출액대비 금융비용부담률은 사상 처음으로 5%미만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금리가 안정되는 동안 채권시장의 지표금리가 세번이나 바뀌며 이제는
국고채 수익률이 확고부동한 기준금리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3월16일 은행보증 회사채에서 보증보험 회사채로 지표금리가
변경됐다.

기업의 부도가 늘면서 감독당국이 금융기관의 회사채 지급보증을 사실상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1일부터는 무보증 우량회사채로 기준금리가 바뀌었다.

보증보험사들이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지난 2월10일에는 장기금리의 지표가 국고채 유통수익률로 또다시 변경됐다.

IBRD(세계은행)IMF(국제통화기금)등의 권유를 정부가 받아들였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무보증채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은행 증권사 보증보험등이 상환을 책임지는 회사채는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기업이 자체 신용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시대가 왔다.

이에따라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신용평가사가 금융시장의 또다른 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신용평가사의 존재는 IMF가 터지기 전까지 유명무실했다.

그러나 무디스 S&P등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자꾸 떨어뜨리면서 그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한국신용평가 한국신용정보 한국기업평가등 국내 3사도 선진평가기법을
받아들이면서 평가 신뢰도가 높아졌다.

채권시장의 규모도 커졌다.

지난 97년 한해 총 회사채 발행규모는 20조9천억원.

지난해엔 39조4천억원으로 늘어났다.

올들어서도 지난 상반기동안 모두 20조7천억원이 발행됐다.

특히 지난해말 금융기관의 회사채 편입이 제한되면서 회사채시장을 이용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신용등급 BBB-이하인 투기등급 기업도 회사채 시장에 명함을 내밀었다.

이들이 발행한 채권은 "정크본드"로 불리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채권싯가평가제의 도입도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투신사 은행등이 설정한 펀드는 이전까지 채권을 장부가로 평가해 기록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부터 신규설정되는 펀드는 무조건 채권을 현재가격으로
매기도록 했다.

또 2000년7월부터는 싯가평가가 모든 펀드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투자자들은 자신이 맡긴 돈이 현재 얼마나 불어났는지, 또는 얼마나
까먹었는지를 한눈에 알수 있게 됐다.

지난 4월23일 개장한 선물거래소에서 금리선물을 상장시킨 것도 채권시장
발전을 측면에서 지원해주고 있다.

현물 금융시장에서 금리의 변동에 따른 위험을 선물시장에서 상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오는 9월에는 국고채선물이 상장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선진국형의 기틀을 마련한 첫 단계일 뿐이다.

아직 선진국형으로 정착되려면 해야 할 과제가 많다.

장기금리의 지표인 국고채가 우선 정기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5월까지 한달에 2~3차례 주기적으로 발행되던
국고채의 발행이 6월의 경우 뒤로 미뤄졌다.

또 7월 발행물량도 언제 나올지 기약할수 없는 상황이다.

투신사의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선 "이래선 채권펀드를 제대로 운용하기
힘들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

국고채의 발행 연기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선물시장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기관투자가 입장에선 금리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국고채선물을 사들여야
하지만 언제 발행될지도 모르는 국고채를 마냥 기다릴수는 없는 노릇이다.

채권대차거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채권대차거래는 채권을 빌려서 파는 것.

다시 사서 갚아야 하는데 살 채권이 없다면 대차거래는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채권시장 발전을 위해선 정부가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지부진한 유통시장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회사채의 경우 발행물량이 한달에 3조원 이상이나 되지만 하루 유통물량은
1천억원에도 못 미친다.

따라서 현재 고시되는 금리가 제대로 된 금리인지 의문을 품는 관계자들이
많다.

< 박준동 기자 jdpowe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