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 < 홍익대 교수 / 무역학 >

국제경제학자 틴버겐은 일찍이 "무역은 거리에 반비례하고 국민소득과
비례한다"고 설파했다.

가까운 국가 사이에, 소득수준이 높은 국민간에 무역거래가 빈번하다는
뜻이다.

한국과 일본은 거리상으로 매우 가깝다.

두 나라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교역량도 늘고 있다.

불행했던 과거사 때문에 불편한 관계가 남아있긴 하다.

한.일 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의 관계였지만 이제부터 명실공히
경제적으로는 "가까운 나라"로 발전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지난 7월1일부터 수입선다변화제도를 폐지함으로써 더욱 자유로운 무역을
지향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와 아울러 지난 4월1일부터 기업과 금융기관의 외환거래가 자유화됨으로써
한국의 대외무역은 완전히 빗장을 풀었다.

악몽같았던 지난 97년11월을 되돌아보자.

30여년동안 국민의 피땀어린 경제의 열매가 쪼그라들고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때 수치스런 "한국-IMF 구제금융 양해각서"에 무역자유화의 하나에
해당하는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를 삽입했다.

타의에 의해 불가피하게 이 제도를 철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IMF측은 한국이 수입승인절차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국제통화기금(WTO)
협약정신을 준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입자유화를 확대함으로써 국내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하지만 IMF와의 협상시 일본이 IMF에 압력을 넣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비밀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난 78년 수출 드라이브정책의 일환으로 무역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이 제도를 채택했다.

정부는 국내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대일 무역의 만성적인 적자를
축소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졌다.

그 내용은 경쟁력이 강한 일본의 공산품에 대한 수입을 일방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이었다.

이 제도를 도입했던 78년에는 대상품목이 2백61개였다.

81년에는 9백24개 품목으로 늘었다가 점차 줄어들어 마지막으로 16개 품목이
남아 있었다.

그 품목은 자동차 대형컬러TV 공작기계 굴착기 35mm 카메라 VTR 휴대폰
전기밥솥 등이다.

한국정부는 이미 3년전에 올해말부터 이 제도를 폐지하기로 약속했었다.

마침내 이 제도를 시행한 지 꼭 21년만에, 그리고 IMF와 약속한 지 1년반
만에 이 제도를 폐지했다.

이로써 그동안 WTO의 줄기찬 비난에서 벗어나게 돼 한국도 이제 "국제무역의
장"에서 떳떳하게 어깨를 펼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빗장이 풀려 우리의 관문은 대외적으로 완전히 개방되었다.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이 약하다고 해서, 국내경제에 짙은 먹구름이
깔린다고 해서 다시 문을 걸어잠글 수 없게 되었다.

축구게임에 비유한다면 우리 팀은 그동안 한두명이 빠져있는 일본팀과
불공정한 게임을 한 셈이다.

이제 11명의 일본선수들과 벅찬 게임을 해야할 입장이다.

우리 선수도 평탄한 운동장에서 룰(rule)에 의해 게임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무역이란 축구게임과 마찬가지로 어차피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고 경쟁을
하다 보면 마찰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것이 국제무역의 현실이다.

지금부터 일본과의 무역에 있어서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즉
방어적인 측면과 공격적인 측면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로 방어적인 문제이다.

일본제품의 급격한 수입격증으로 국내산업 기반이 파괴되거나 일본제품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때 WTO 협정에 준거한 긴급수입제한제도나 반덤핑
관세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길이다.

수입이 늘어날 것은 뻔하다.

일본이 이 기회를 이용해 한국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덤핑수출을
감행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럴 경우 국내산업의 피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덤핑관세의 부과로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긴급수입제한제도는 예를 들어 특정상품인 전기밥솥의 수입량이
총수입량에 비해 크게 증가했을 경우 그 수입수량을 제한하는 것은 WTO에
허용되어 있으므로 이 제도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둘째로 공격적인 문제이다.

수입선다변화제도가 철폐된다고 해서 국내에서만 일본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수비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다.

공격적인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부가가치가 높은 경쟁력있는 상품을 개발, 일본시장의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어야 한다.

축구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작전이 공격적이어야 하는가, 방어적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런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공수양면의 절묘한 작전이어야 하는가.

우리가 대일무역에 적용해야 할 전략적 무역정책은 공수양면이 되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