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번 개각과 함께 법적 기구로 승격시킨 경제정책 조정회의를
어제 처음으로 열어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금융구조와 기업구조의 개혁,
일자리 창출, 생산적 복지체제 확립 등으로 확정했다.

이 가운데 그동안 여러 부처에서 거론하던 감사위원회 제도의 도입, 총
신용한도 제도의 확대,기업지배 구조의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대기업
정책이 특히 관심을 끈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 대기업들은 아직도 엄청나게 높은 부채비율에
허덕이고 있고 그 지배구조 역시 투명하지 못하며 국제 경쟁력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러니 재벌개혁이 미진하다는 국내외의 비판이 여전하다.

대기업의 나쁜 점들을 뜯어고쳐 보다 강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정부의 충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여건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기업을 옥죄는 조치들이 옷로비 의혹, 고관집 절도사건
등으로 어수선해진 정국의 흐름을 반전시키고 민심을 추스리려는 재벌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진을 비롯한 일부 기업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도 이런
의혹의 대상이다.

제2금융권 자금을 재벌들이 독식한다는 일방적 여론에 영합해 투자한도의
축소 등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더구나 지난 재보선에서 패한 집권여당이 내년 총선에 대비, 정책을 통해
인기를 만회하려 할만한 시점에서 나타나는 움직임들이 공교롭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과거에 선거를 앞두고 나타난 비슷한 일들이 나중에 대부분 경제외적 목적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정부의 원론적인 해명이 곧이곧대로 먹혀들지
않는 측면도 있다.

우리는 재벌의 경제력 편중을 완화하고 경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데 적극 동의한다.

국민의 정부도 상호 지급보증 금지, 결합 재무제표 작성, 사외이사 제도
등을 도입, 재벌의 개혁방향을 제시하고 이같은 법과 제도의 정비를,
행정조치로 재벌을 길들이던 과거 정권과 다른 점이라고 자랑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일들은 이를 무색하게 하지 않느냐 하는 우려를 갖게 만든다.

최근의 산업활동이 뚜렷하게 활발해졌지만 아직도 성장의 엔진역할을 하는
기업의 투자는 거의 죽어있다.

경기가 호전됐다는 평가도 워낙 죽을 쑨 지난 해와 대비한 것이다.

자칫하면 망한다는 강박관념에 몰려 대기업들이 새로운 투자는 엄두도 못
내는 탓이다.

소리없이 사그라진 대기업만 해도 동아건설 쌍용 진로 해태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마당에 일방적인 여론몰이에 의지해 대기업을 얽매는 조치가 과연
순기능을 할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대기업을 경제발전의 주체로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에게도 애정을 보낼 필요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