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라 아셀라니스감독의 다큐영화 "바비인형의 제국"은 59년에 등장한 뒤
60년대 간호사에서 록가수를 거쳐 90년대 대통령으로 변신하는 바비의 이력을
통해 미국 여성사를 추적한다.

바비의 직업이 보여주듯 지난 40여년간 구미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눈부시게
향상됐다.

태풍에 남녀의 이름을 번갈아 붙이고, 미스와 미세스 대신 미즈로 통일했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선 폴리스맨을 폴리스, 체어맨을 체어퍼슨, 스포크맨을
스포크퍼슨, 스튜어디스를 프라이트 어텐던트로 바꾸는 등 직업명칭에서
남녀 구분을 없앴다.

이력서의 결혼여부 항목도 지웠다.

우리 사회도 많이 달라졌다.

결혼이 퇴직을 의미하던 건 옛말이고 남성독점영역도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남성중심적 사고와 관행의 뿌리는 아직 깊다.

유치원 때부터 남녀의 성역할을 구분해 강조하고 가부장제시대의 억측과
편견에 얽매여 여성의 능력 발현 기회를 제한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OECD 가입국중 꼴찌에 가깝고, 정부투자기관의
과장이상은 1.1%밖에 안된다는 사실은 차별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입증한다.

오늘부터 "남녀차별 금지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앞으론 고용 교육 재화 시설 용역의 제공및 이용, 법집행 등에서 성차별이나
성희롱을 당할 경우 구제신청을 할수 있다.

교육부가 내놓은 학교내 성차별및 성희롱 예방지침에 따르면 이제부터 여자
는 결혼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거나 복장지도때 특정부분을 들추면
처벌대상이 된다.

여성특위는 때맞춰 1~7일을 제4회 여성주간으로 정하고 이같은 내용을 홍보
한다.

그러나 최소한의 권익 보장을 위해 마련된 이 법률이 오히려 여성고용을
방해할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의 5급이상 간부 대다수가 여성의 경우 "능력 차이는 없으나"
''통솔력이 떨어진다''고 답한것은 남녀평등이 법만으론 실행되기 어려운 문제
임을 전한다.

최초의 다큐멘터리 "북극의 나누크"를 찍은 미국인 탐험가 로버트 플래허티
(1884-1951)는 학살자의 이데올로기도 자신들과 다르다는 차이를 강조하는데
지나지 않음을 들어 차별은 무시무시한 범죄일수 있다고 말했다.

법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노장청및 남녀가 조화를 이루는 따뜻하고 건강한
세상을 위해 구태의연한 생각을 벗는 남성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