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변호사는 영화의 단골 여주인공이다.

뉴스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여변호사"라는 키워드를 쳐보자.

영화나 비디오 소개가 줄줄이 화면에 떠오른다.

컨스피러시, 페어게임, 의뢰인, 펠리컨브리프...

언뜻 생각나는 영화만 꼽아도 손가락이 모자란다.

뛰어난 머리로 얽히고 설킨 음모를 푸는게 영화에서 여변호사에게 맡겨진
임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여"변호사일까.

세인의 호기심을 자극할 캐릭터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인 듯하다.

우선 여변호사는 "잘난 여자"의 대명사로 통한다.

세계 최대 파워맨인 클린턴 미국 대통령보다 더 똑똑하다는 힐러리 여사도
여변호사가 아닌가.

그러니 "지성에 미모까지 겸비한" 여변호사는 영화를 드라마틱하게
만드는데 적격인 셈이다.

심인숙(35) 변호사도 이런맥락에서 보면 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면모를
갖췄다.

늘씬한 키에 시원스런 외모.

서울대 법대 차석 졸업, 미국 하버드대 법학석사의 화려한 학력.

금녀의 집으로 여겨지던 시절, 메이저 로펌인 세종에 여성 최초로 입사한
것도 이채롭다.

그러나 이런 호기심에서 심변호사를 만난 사람이라도 헤어질 즈음에는
"여자"란 사실보다 뛰어난 "전문성"에 감탄하게 된다.

심변호사의 전문분야는 증권.금융.

그녀는 이 분야에서 유난히 "최초" 기록이 많은 개척자다.

89년 코리아 펀드와 90년 코리아 유러펀드 양측의 법률자문을 맡았다.

지난 94년 국내민간기업 최초의 뉴욕상장이었던 포스코의 DR(주식예탁증서)
발행도 심변호사의 작품이었다.

같은해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시도된 서울시의 양키본드 발행, 외국금융기관
으로는 첫 시도된 베어링은행의 국내지점 설치작업도 심변호사의 손을
거쳤다.

이밖에 아리랑펀드등 심변호사가 법률자문을 해 준 해외증권 관련업무만도
줄잡아 30여건에 달한다.

국내통신업계 최대규모인 4억달러를 끌어들인 LG텔레콤의 외자유치건도
심변호사가 맡았었다.

"초기에는 나이들어 보이려고 노력도 많이 했어요. 일부러 부인복 코너에서
옷도 사입고,머리도 노숙하게 하느라 신경쓰기도 했죠"

금융분야 여변호사는 더더욱 희귀했던 시절이라 "젊은 여자" 변호사를
보고 못미더워하는 고객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심인숙"이란 이름 자체가 금융전문가를 대변할 정도가 됐다.

심 변호사를 보고 세종에 의뢰하는 단골고객도 있으니 말이다.

파생금융상품같은 첨단분야에도 이미 95년부터 손대기 시작했다.

당시 이 분야는 한국에서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고객은 주로 외국금융기관.

심 변호사는 97~98년 버니지아 대학 상임연구원을 지내면서 미국에서 첫손
꼽히는 파생금융상품 전문가인 필립 맥브라이드 존슨 선물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게서 배울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런 전문성 덕분에 증권연수원 사법연수원의 인기강사가 됐다.

선물.옵션및 M&A, 파생금융상품 등이 심변호사의 담당과목.

증권거래소 주가지수선물 도입준비위원회 실무위원과 금융감독원 심사조정
위원회 위원으로도 활약하는 등 금융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IMF이후 심 변호사는 더욱 바빠졌다.

12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가는 날이 일주일에 절반을 넘는다.

사건을 맡을 때면 3일밤을 꼬박 새는 일도 부지기수다.

한달을 내리 3시간밖에 못잔 적도 적지 않다.

"고객이 원하는 스케줄을 지킨다는 것은 철칙입니다. 사건을 맡아 마감기일
까지 맞추자면 집중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죠"

이런 끈기와 집중력은 심 변호사의 성공요인이기도 하다.

뭐든지 한가지를 붙들면 끝장을 보는게 심 변호사의 버릇.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전인 80년대 중반 대학시절의 일이다.

우연히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심 변호사는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

처음에 호기심 정도였지만 일단 배우기 시작하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심 변호사는 하루 6시간씩 컴퓨터학원에 틀어박혀 지내기를 무려 반년동안
했다고 한다.

어셈블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랭귀지를 마스터했을 정도.

"미국 증권거래소(SEC)에만도 수백명의 변호사들이 있어요. 한국의
금융감독위원회에는 최근에야 변호사를 몇명 영입했을 정도로 초보단계지요.
한국이 금융분야를 빨리 선진화하려면 공공기관도 좀더 전문화돼야 합니다"

한국의 금융선진화에 기여하는게 희망이라는 심 변호사.

"프로가 아름답다"는 광고카피가 딱 어울리는 파워우먼이다.

< 노혜령 기자 hroh@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이익원 권영설 이심기(산업1부)
노혜령(산업2부) 김문권(사회1부) 육동인(사회2부)
윤성민(유통부) 김태철(증권부) 류성(정보통신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