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시장실패가 아니라 헌법실패다"

전통적인 후생경제학자들은 국가를 신비한 실체, 혹은 선의의 독재자로
여기고, 국가는 그들이 정의한 경제의 목표 또는 정부의 목표와 그들이
제안한 수단에 따라 행동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실제로 서구 사회에서 나타난 현상은 그렇지 않았다.

서방의 모든 사회에서는 이른바 시장실패를 치유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국가가 점차 비대해져 가고 있음을 목격했다.

국가는 복지국가 과제와 신중상주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적자예산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여 사적 영역을 점차 침식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시장실패를 치유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시장경제가 망가져 가고
있었다.

정치와 국가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후생경제학자들은 국가를 신비에
가득찬 선의의 독재자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채 계속해서 고도의 수리.
계량경제학을 동원하여 경제와 국가의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할 수단을
국가에게 제공하는 사회공학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뷰캐넌(그리고 그 밖의 공공선택론자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단적인, 그리고 특히 정치적인 결정이 공익에 헌신하는 선의의 독재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개인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인간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전통적인 후생경제학자들과는 달리 현명하게도 정치적 의사
결정과정과 이 과정을 지배하는 정치적 헌법을 분석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
했다.

유권자들의 지지표를 얻기 위해 정치가들이 경쟁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필연적으로 예산적자를 야기시킨다.

뷰캐넌은 이러한 현상을 "적자속의 민주주의"라고 표현하고 있다.

케인즈주의의 효과에 관한 보편적 확신 때문에 전통적인 재정윤리인 예산
균형원칙이 철폐되었다는 것이다.

다수의 형성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구성요소이다.

뷰캐넌은 이 다수파의 형성과정에는 재정정책을 비롯하여 입법정책의
편파성과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침해 그리고 국가활동 규모의 확대
성향이 내재돼 있다는 것, 그리고 관료집단과 이익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인하여 민주주의 정치과정에 내재된 그러한 성향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는
것도 이론화하고 있다.

뷰캐넌은 현대 민주주의는 이러한 결함을 내재적으로 안고 있다고, 따라서
국가는 시장실패를 제거하기 보다는 오히려 시장을 교란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대국가가 이러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뷰캐넌은 국가의 활동을 제한할 헌법이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
했다.

현대국가에서는 다수가 결정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정당하다는
신조가 지배했고 이러한 신조 때문에 다수의 의지를 제한할 헌법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헌법실패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뷰캐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시장실패가 아니라 헌법실패이다.

이것은 지극히 새로운 혁신적인 견해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또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뷰캐넌의 사상체계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민경국 < 강원대학교 경제무역학부 교수 kkmin@cc.kangwon.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