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의 민족이동과 문화전파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다.

그래서인지 어떤 민족이건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땅에서 생겨난 유일한
시조로부터 한 핏줄을 이어받은 단일 민족이라 믿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처럼 민족구성이 단순한 경우 그런 감정은 더 강하다.

70년대 중반 지금은 원로 사학자 김정학 박사가 문화인류학회 심포지엄에서
"한국 문화는 북방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남방문화적인 색채도 있다"는
내용의 주제발표를 했다.

그때 일부 학자들은 "그렇다면 우리민족이 미개인의 후손이냐"며 몹시 분개
했다.

그들이 이처럼 남방문화론에 저항을 느꼈던 까닭은 단순하다.

말레이, 인도네시아 등 남방아시아족은 미개한 야만이라는 선입관 탓이다.

남해안 지방의 사람만 북방문화인이 아니고 야만인의 후손이냐는 지역적
저항도 크게 한몫했다.

그러나 김 박사의 남방문화론은 77년 김해 예안리 85호분에서 1천6백여년
전 여인의 두개골이 "위지동이전"의 기록처럼 이마와 뒤통수를 돌로 눌러
편편하게 한 편두 형태로 발굴됐다.

이 발굴로 김 박사의 남방문화론은 설득력을 얻었다.

편두는 고대 남방아시아 습속이다.

그뒤 소장학자들에 의해 고인돌풍습, 제주도의 돌하르방 등 열대해양문화의
증거가 강조되고 백제 신라 가야의 시조가 모두 농경을 위주로 한 남방의
난생신화 계통의 인물임이 밝혀졌지만 지금도 남방문화론은 학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조금은 덜해졌지만 유목을 위주로 했던 고구려 부여등 북방문화에 대한
편애는 그만큼 심하다.

지난주말 KBS TV가 "가야인은 성형수술을 했다"는 제목으로 내보낸 역사
스페셜은 편두풍습을 중심으로 남방문화론을 다룬 것이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다소 엉뚱해 보이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남방문화론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쉽기만 하다.

우리 사회가 아직 그것을 수용할 정도로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탓일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