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실 < KAIST 교수 / 인문사회과학부 >

문화.예술이 21세기 국가 기간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자도서관이 구축되고 전국적인 문화인프라 종합 정보 네트워크가 구축된다

또 문화 지식 정보들이 전산화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창의적인 능력을 보인 인물들은 "신지식인"으로 선정된다.

영화 "타이타닉"이 벌어들인 외화가 자동차 몇천만대를 수출한 양과 맞먹는
다는 자극적인 구호 아래 문화산업 분야에 대해 야심찬 투자 계획이 수립돼
있다.

이에 대해 순수예술가들과 인문학자들은 예술의 죽음을 들먹이며 개탄하고
비판한다.

한쪽(정부)은 돈벌이가 된다며 문화와 예술을 산업이라는 이질적인 영역과
결합시켜 권장하고 다른 한쪽은 예술의 고사를 우려하고 있다.

왜 이런 상반된 의견이 나타나는 것이며 진실은 무엇인가.

문화의 영역에 뭔가 새로운 변화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80년대의 동구권 몰락, 이념이 사라진 시대 정도의 변화가 아니다.

신세대가 단순히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야타"를 외치는 철없는 젊은이를
지칭하는 개념은 아니게 됐다.

역사소설 및 고전음악의 수용자와 "오빠"를 외치며 열광하는 수용자는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적어도 문화 향유에 있어서 첨단과학자와 전문가, "오렌지족"은 같은 위치에
존재한다.

이 두 문화 범주는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방향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

이미 TV 신문 등 매스미디어에 의해 대량 생산.공급되는 예술은 뉴 미디어,
디지털 미디어에 의해 또다른 변모를 겪게 된다.

디지털의 원리는 컴퓨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0과 1의 조합인 디지털 코드의 전송 방식 덕분에 정보가 전보다 훨씬 빠르고
많이 전달된다.

또 TV나 영화와 달리 정보를 보낸 사람에게 자유롭게 답신할 수 있다.

인쇄된 활자와 달라서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정보를 자유롭게 고칠 수 있다.

종래의 영상매체와 너무나 다른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 미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전달 체계, 새로운 예술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이것을 즐기는 신세대는 철없는 아이들이 아니라 "N세대", 즉
전자통신망을 즐기는 "네트 세대"로 규정되고 있다.

정부가 현재 주력하고 있는 문화산업의 분야를 살펴보자.

애니메이션, 영상산업, 게임산업, 음반, 방송영상, 출판, 인쇄산업...

공통점은 무엇인가.

한결같이 디지털 미디어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분야이다.

돈을 목적으로 키워야 할 분야라기보다는 디지털 미디어에 예술가 문화인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이루어질 새로운 문화 예술의 분야인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에 정부의 의지가 너무 갑자기, 강하게 개입되는 바람에 기존
예술가들이 불안과 좌절을 느끼는 것 아닐까.

문화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이 미디어에 흥미를 가지고 자신들의 창조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 조성이 아쉬운 시점이다.

문학 분야에서도 디지털 미디어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훌륭한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활자가 발명되기 전에 이야기(구비문학)가 있었고 이 이야기들은 인쇄기술에
의해 책을 매체로 소설 시라는 장르로 변해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다.

전파매체에 의해 이야기는 영화 드라마가 되었고 이제 디지털 미디어에 의해
새로운 변모를 눈앞에 두고 있다.

디지털 문학은 컴퓨터 통신문학에서 그 조짐을 보였다.

하이텔이나 유니텔 등의 통신망에 작품을 올리고 통신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라면 누구나 작품을 감상하고 즉시 자신의 소감을 통신에 올린다.

책과 달리 작가와 독자의 소통이 직접적이고 누구나 작품을 쓸 수 있기 때문
에 작가의 권위가 사라진다.

디지털은 속성상 다른 요소들과 쉽게 섞인다.

소리 영상 문자가 통합적으로 작용한다.

컴퓨터 게임은 하이퍼텍스트 소설의 특성을 잘 담고 있다.

머드 게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은 독자자신이며 게임을 해나가
는 과정에서 독자는 스스로 하나의 이야기를 짜나간다.

단순한 오락을 문학이라 말하느냐고 비난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영화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수십년간 움직이는 화면 정도로 치부되지
않았는가.

새로운 미디어에 예술성을 부여하는 것은 예술가들의 창조력이며 그 가능성
은 무한히 열려 있다.

이런 미디어를 산업쪽으로만 너무 강조할 때 문제가 된다.

디지털 미디어는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을 기다리며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채
우리 눈앞에 열려있다.

이제 이 미디어를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는 도구로 사용할 시기가 왔다.

정부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이 상상력들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줄 때 "돈"은 저절로 따라오게 될 것이다.

< choi@sorak.kaist.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