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에 손을 대자 문이 열린다.

"켜져라 TV"하면 TV가 가동되고 침대에 누워 "꺼져라 불"하면 어두워진다.

집안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 도착할 때쯤 나간다.

외출하면 전등과 가스는 자동 차단된다.

해외에서 컴퓨터로 자기집 안방을 본다.

영화속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분양되고 있는 고급아파트의 실제상황이다.

평당 1천만~1천9백여만원인 이들 아파트엔 방범을 위한 지문인식장치는
물론 가전제품과 조명기구를 말로 조절하는 음성제어시스템이 도입된다.

중앙집중식 산소발생기와 집진기가 설치되고 바닥엔 소음을 줄이는
진동방지재가 시공된다.

단지 안에 수영장이 딸린 휘트니스센터와 의료시스템도 마련된다.

고급아파트의 등장은 분양가가 자율화된데다 IMF한파 이후 미분양이
늘어난데서 비롯된 차별화전략의 결과다.

중대형아파트 선택의 기준이 교통 교육 상권에서 쾌적하고 안전한 생활환경
쪽으로 바뀐 것도 한 요인이다.

전망 중시에 따라 모두 초고층으로 지어지는 이들 고급아파트들은 원스톱
리빙이 가능하도록 문화 체육 편의시설및 초고속통신망 설치에 초점을
맞춘다.

사치스런 마감재나 자재 사용에 치우쳤던 호화빌라와는 다른 셈이다.

IMF터널을 지나면서 20여년동안 똑같던 중소형아파트 디자인도 달라졌다.

안목치수 적용으로 전용면적이 넓어진 것도 최근의 변화다.

그러나 보통아파트의 MDF문은 여전히 날씨에 따라 멀쩡하게 잘닫히다가도
뻑뻑해진다.

베란다와 다용도실 창고는 곰팡이투성이요, 방음처리가 안돼 위아래층이
다투는 일도 흔하다.

진입로나 교육시설 없이 분양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고급화를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고급화 대형화에 치중하면 전체 공급물량을 줄이고 분양가를 높여
서민들의 내집마련을 힘들게 할수 있다.

분양경쟁력을 내세워 고급아파트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중소형에도 보다
정성을 기울이는 기업정신이 아쉽다.

"기능적이고 수용할수 있고 접근가능하며 안전해야 한다"는 유니버설디자인
의 원칙은 평형에 관계없이 중요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