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억속에 "영원한 미스코리아"로 남아있는 김성희(77년 미스코리아 진)
씨가 사랑의 전령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지난 3월 미스코리아 출신들의 모임인 "녹원회" 회장을 맡아 왕성한
사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성희씨가 9년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것은 지난해말.

세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그가 "다시 돌아와 거울앞에 선 누님"의 모습
으로 다가온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미스코리아대회에 대해 성을 상품화시킨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관하는 단체의 문제일 뿐입니다. 어린 나이에 미스코리아가 돼서
미의 사절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선 안됩니다.
녹원회는 13년전 만들어진 뒤 꾸준히 사회봉사활동을 벌여왔지만 올해부터는
더욱 활발히 할 생각이예요. 사랑의 실천을 통해 미스코리아에 대한 사회일각
의 나쁜 인식을 불식하고픈 마음도 있습니다"

그는 최근 녹원회 사무실을 마련하고 사회봉사단을 꾸렸다.

봉사단은 그동안 여성실직가장과 소년소녀가장을 돕기 위해 여러차례
자선바자회를 열어왔다.

다음달 14일에는 서울대병원내 소아병동의 어린이 암환자를 위해 하야트호텔
에서 "사랑의 패션쇼"를 개최할 계획이다.

한 방송국과 함께 사회봉사를 테마로 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녹원회는 또 15명의 풀스토리를 담은 책도 출간할 예정.

일반인들이 알지 못했던 미스코리아의 순수한 마음과 인생여정, 미용 및
패션에 대한 생각 등을 담는다.

이 책을 통해 얻는 수입도 결식아동돕기에 전액 기부할 방침이다.

그가 미스코리아의 왕관을 쓴 것은 17살의 꿈많은 소녀때였다.

지난 80년 "쇼2000"(MBC)의 MC를 맡으면서 방송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82년에는 "매력"이란 데뷔곡으로 KBS MBC에서 신인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뒤 CF모델 TV탤런트 라디오DJ 등 만능엔터테이너로 활약했다.

"영화배우 빼고는 다해봤다"는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인기연예인으로 활동을 지속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했다.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85년에 미국 L.A에
있는 종합예술학교인 FIDM에서 패션디자인과 미술이론을 공부하러 떠났던
것도 그때문이예요. 88년에 청담동에 그리니스모드(Greenis Mode)란 패션숍을
열어 새로운 꿈을 펼 수 있게 됐지요"

김성희씨는 "가족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는 앞으로 ''미스코리아 김성희''가 아닌 ''패션업계 커리어우먼''으로
인정받겠다는 각오다.

사회에 봉사하는 여성으로서 미스코리아의 이미지가 심어지도록 힘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 장규호 기자 seinit >


< 김성희씨 약력 >

<>77년 미스코리아 진
<>82년 KBS MBC 신인가수상 수상
<>84년 미 메릴랜드대 영문학과 졸업
<>88년 패션숍 그리니스모드(Greenis Mode) 개업
<>99년 현재 LG홈쇼핑 보선전문프로그램 "쥬얼리 퍼스트 클래스" 공동진행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2일자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