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 < 서울대 교수 / 경제학 >

국제경제질서가 서서히 그러나 구조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미 UR(우루과이 라운드)를 거치면서 대폭적인 시장개방과 함께 각국내
무역관련 경제정책의 국제화 조짐이 엿보였었다.

그리고 금년말로 예정된 뉴 라운드(혹은 밀레니엄 라운드)에서는 이 문제
들이 본격적으로 다루어 질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진행중인 국내 구조조정 작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뉴 라운드에서는 농산물과 서비스 부문의 새로운 품목들이 추가될 예정이며
협상을 거친 부문들이라 하더라도 시장개방의 폭을 한층 더 넓히는 방안을
찾게 될 것이다.

공산품의 경우에는 무관세화까지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UR가 경제적 국경을 낮추는 이른바 소극적 자유화에 그 비중을 두었다면
뉴 라운드에 이르러서는 이와함께 적극적 자유화라는 명분으로 무역과
관련된 각국 정책간에 조정, 조화 또는 접근을 위한 시도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WTO는 국제무역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갖는 외국인 투자, 경쟁정책, 환경
정책, 정부조달의 투명성 및 전자상거래 등과 관련하여 안건들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으며 중요 무역국가들은 각 사안별로 이미 입장을 정리한 상태이다.

경제주권에 속하는 새로운 의제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근본적으로 각국간
무역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는데서 찾아 볼 수 있다.

무역장벽의 제거와 함께 국제거래가 급속하게 확대됨에 따라 각국의 경제
정책 및 제도 또는 관행이 점차 국제무역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장벽
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각국간에 관련 경제정책이 큰 격차를 보인다면 결국 수출경쟁력에 있어서
차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수입상품이나 서비스가 경쟁면에서 불리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경쟁가능성을 높여주고 공정경쟁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안건들은 그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있다.

국가간에 상이한 제도나 정책은 국제무역에 왜곡을 가져올 수 있고 따라서
시장개방이 큰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국제규범의 제정 또는 국제적 표준화를 목표로 하는
이러한 시도는 결국 "선진경제의 것"을 따라 오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와 같이 선진경제의 경우 현행 제도나 관행에 기초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개도국들은 이것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뉴 라운드는 선진경제 중심의 분업체제 재편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를 예고하고 있다.

반면 개도국 경제는 그만큼 높은 조정비용을 치르지 않을 수 없다.

관련법 제도의 정비와 함께 시장개방에 대비해야 하는 2중의 부담을 감수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뉴 라운드와 관련하여 크게 우려할 게 없다는 낙관론도 등장하고
있다.

주로 시장개방의 상황이나 구조조정의 취지로 미루어 한국경제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데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역점을 두고 있는 금융구조조정이 과연 실물 차원에서
산업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시장개방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의 의의는 기본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전문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데 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에 있어서 시장개방의 확대 및 심화에 따라 앞으로
국내시장에서 독과점적 이득을 누릴 수 없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금융부문을 포함하여 국내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오히려
외국기업들이 경영 노하우를 앞세워 지대( rent )를 추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예상되는 뉴 라운드의 의제가 시사하듯이 경제관련법 제도의 국제화 추세는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대외적으로 설득력을 갖추는 한편 그간의 시행 착오를 거울삼아 한국적
여건에서 시장경제가 원리대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법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장경제의 틀을 확립한다는 자세로 일관성있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에 따라 자율성을 바탕으로 경쟁력 강화를 취지로 하는 기업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끝으로 과거와 같이 외부 압력에 의해 수동적으로 시장개방이나 법 제도
정비를 추진함으로써 큰 비용을 치를 뿐만 아니라 경제운영에 차질을 빚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구조조정을 단계별로 꾸준히 추구하는 것이 뉴 라운드에 가장 효율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길이라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