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사 독점 전재 ]

기업의 인수합병(M&A)이 전세계적으로 봇물을 이루고 있다.

미국 최대 통신업체인 AT&T가 미디어원을, 도이체텔레콤은 텔레콤이탈리아를
인수하는 등 큼직한 합병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의 기업간 인수합병은 규모와 다양성에서 과거의 M&A와는 양상이 크게
다르다.

가장 큰 특징은 합병 건수의 폭발적인 증가다.

컨설팅회사인 부즈알렌&해밀턴에 따르면 96~98년 3년간 기업의 합병과
제휴는 2만여건에 달했다.

합병 규모도 미국 1천대 기업 매출액(97년 기준)의 21%에 해당한다.

합병이나 업무제휴의 목적은 주로 해당기업의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기업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데 있다.

따라서 기업 M&A의 동향을 단순히 합병규모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합병에 따른 시장 파급효과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예컨대 AT&T의 미디어원 인수는 합병규모는 크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케이블
TV네트워크의 제휴보다는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작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합병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합병의 유형도 다양화 하고 있다.

기업의 합병이나 제휴는 해외시장 진출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최근 전체 합병건수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합병은
대부분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것이다.

외국기업과의 합병이나 제휴는 해외시장 진출이라는 기업의 순수한 경영전략
에서 비롯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항공전문잡지인 에어라인 비즈니스에 따르면 97년6월에서 98년5월 사이에
세계 항공사간 합병이나 제휴는 전년동기대비 38% 늘어난 5백여건에 달했다.

이같은 외국 항공사간 합병이나 제휴는 대부분 각국 정부의 진입제한 정책
때문이었다.

"별들의 제휴(Star Alliance)"로 불리는 독일 루프트한자와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의 업무제휴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들의 업무제휴는 사실상 합병과 유사했다.

항공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승객들이 두 항공사의 여객기를
자유롭게 바꿔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무제휴는 합병에 비해 비효율적인 점이 많다.

인원감축을 통한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무리 포괄적인 업무제휴라 할지라도 합병이 갖는 시너지효과를 1백%
거두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기업과의 합병이나 업무제휴에는 난관도 많다.

그 나라의 시장환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경우 자칫 합병이나 업무제휴가
무산될 수도 있고 계획을 크게 바꿔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업무제휴의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 외국 현지의 시장상황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경우에는 업무제휴로 투자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월마트가 주로 합작을 통해 외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월마트는 91년 멕시코에 진출할 때 현지기업인 시프라와 합작, 현지사정에
적응하고 난 뒤에서야 97년에 독자적인 영업망을 갖추었다.

대형프로젝트와 관련된 업무제휴는 단순히 자원배분의 성격을 갖기도 한다.

영국의 글락소 웰컴과 스미스클라인 비첨을 비롯한 10여개의 대형 제약업체
들이 인간DNA 변형실험을 위해 4천5백만달러규모의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이 그 예다.

업무제휴는 경쟁관계가 아닐 경우 훨씬 효율적인 경향이 있다.

제휴회사들이 경쟁관계에 있지 않으면 서로 기술이나 노하우를 공유하기가
훨씬 쉽다.

타임워너의 터너방송(TBS)은 최근 필립스와 업무제휴를 맺었다.

필립스는 TBS가 애틀랜타에 건설중인 경기장의 이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반면 TBS는 필립스의 디지털 통신장비를 제공받고 필립스의 고객도 끌어들일
수 있게 됐다.

TBS의 스티브 헤이어 사장은 "제휴의 최대 장점은 상대를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는 기업의 고급인력난 때문이다.

고급인력난에 시달려온 제약업체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상위 20개 제약사들의 바이오테크 관련 제휴는 88~90년 1백52건에서 97~98년
에는 3백75건으로 2배이상 늘어났다.

둘째는 경제환경의 급격한 변화속도 때문이다.

다른 기업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을 경우에는 이같은 변화를 감지하고 적응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인터넷의 발전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기업이나 일반 소비자들은 인터넷상의 가상 쇼핑몰을 통해 상거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합병이나 기업제휴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합작의 성공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의 다우코닝 사례에서 이 조건을 찾아
볼 수 있다.

다름아닌 "신뢰"다.

이 회사의 기업제휴 전문가인 피터 부트는 "신뢰"가 제휴성공의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상대회사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악의적인 시각으로 보지않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자세는 바로 "신뢰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든 합병이나 제휴 파트너에 대한 믿음이 성공의 열쇠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5월15일자>

< 정리=박영태 기자 py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