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영 < 홍익대 교수. 경제학 >


시민을 볼모로 8일간 지속됐던 서울 지하철 파업이 노조의 조건없는 파업
철회로 막을 내렸다.

이번 지하철 노조의 파업은 민주노총이 기획한 4~5월 대투쟁의 첫번째
대규모 파업이었다는 점에서 그 귀추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당초 민주노총은 4월 중순 공공연맹소속 서울 지하철노조의 파업을 시발로
한국통신 파업, 금속연맹에 속하는 대우중공업 등 대규모 사업장의 파업으로
연결해 투쟁의 열기를 고조시킨후 메이데이에 대규모 집회를 가질 계획이었
다.

그렇게하여 일방적 구조조정과 고용조정반대, 근로시간단축, 정부와의 직접
협상 등 그들의 입장과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노총의 대투쟁은 그 선봉을 맡은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실패로 무력화될 전망이다.

사실 민주노총의 봄철 대투쟁계획은 처음부터 무모하고 무리한 것이었다.

우선 상황판단이 잘못됐다.

IMF구제금융체제라는 경제위기의 긴터널에 들어간 후 겨우 경기회복의
불빛이 보이려고 하는 시점에서 대규모 투쟁을 시도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전쟁이나 공황과 같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아무리 강경한 노조라
도 대결을 피하고 위기극복에 동참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 보편적 경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하고있는 국민의 정서와
여론을 외면한 대규모 파업과 투쟁은 경제활성화와 국가신인도의 증진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왔다.

요구와 주장도 무리한 것이었다.

경제위기를 맞아 정부와 기업 등 모든 부문에서 밀도높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느끼고 이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터인데도 구조조정을 전적으
로 반대하고 나선 것은 지나친 것이었다.

물론 노동조합으로서는 구조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실직자를 걱정해
고용조정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극단적인 집단이기주의로 인식
될 수 밖에 없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속에서 경쟁국가의 정부와 기업이 구조조정과 기업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키고있는 실정이고 보면 우리 정부와 기업
으로서도 구조조정과 기업혁신을 하지않고 어떻게 이들 국가와 경쟁할수
있다는 말인가.

일찍부터 구조조정과 기업혁신을 해 온 영미국가들은 오늘날 고성장.저실업
으로 호황을 누리고있는 반면 근로시간단축이나 일자리 나누기로 버텨온
유럽대륙국가들은 저성장.고실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자는 말인가.

가장 큰 무리수는 불법파업이라는 투쟁수단을 강행한 일이다.

경제위기속에서 국민의 지지도 받지못하고 정부의 기본정책을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불법파업이라는 투쟁수단을 택한 것은 스스로 실패를 자초하였을
뿐 아니라 극히 무책임한 일이기도하다.

법규와 절차를 무시한 불법파업은 정부의 강경대응과 공권력의 개입여지를
만들어준 셈이다.

특히 구조조정을 해야할 서울지하철공사의 조합원들에게 직장복귀시한을
넘기게 함으로써 면직 등 중징계대상이 되도록 한 것은 정말 무책임한
일이다.

민주노총의 4~5월 대투쟁이 상황판단과 명분, 그리고 수단의 모든 면에서
무모하고 무리한 것인데 반해 서울 지하철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정말
로 오랜만에 보여준 의연한 자세였다고 나름대로 평가하고 싶다.

사실 신정부는 출범이후 줄곧 모순된 노사관계정책을 펴 옴으로써 상당한
혼란을 불러왔다.

"구조조정"과 "노조 끌어안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과욕때문에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지만 노사 모두 노사정위를 탈퇴하고 말았다.

그런 혼란 속에서 서울 지하철파업을 맞은 정부가 법과 원칙을 고수하겠다
는 강경한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노조의 "백기"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번 서울지하철 파업의 경험을 통해 노조는 무모한 투쟁과 대결은 실패하
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정부도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최선의 노사관계정책임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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